- BE ON
- 스토리 채널
-
LH인을 위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②
한때 국내 최고급 주상복합 건물이었던
TV드라마 <빈센조>의 금가프라자 - “세운상가”
- 글. 최성원(글로벌사업처 차장)
- 올 초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를 본 사람들 중, 배경이 된 ‘금가프라자’가 서울 구도심에 위치한 “세운상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1960~1970년대 영화를 누리다가 드라마 <빈센조>처럼 한때 전면철거의 운명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존치하기로 결정된 세운상가를 소개한다.
- TV드라마 <빈센조>에서 주인공이 이탈리아 대사 등을 초청해 파티를 연 장면의 배경이 된 광장
소개도로, 종삼, 국내 최초 재개발지구
세운상가가 건설되기 전의 모습은 또다시 일제강점기와 연결된다. 할리우드 영화 <미드웨이>를 보면 하와이를 공습했던 일제에 대한 복수 차원으로서 미국은 일본 본토 공습을 강행하는데, 이때 사용했던 폭탄이 목조건물이 대다수였던 일본 본토에 화재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인 ‘소이탄’ 이었다. 전쟁말기 일본은 이를 대비해 건물 간 불이 옮겨붙는 것을 막고자 일본 자국은 물론 한국의 기성 시가지 내에 “소개(疏開)도로”라고 불리는 인위적인 공지를 곳곳에 조성하였다. (여담으로 부산의 국제시장터 또한 소개도로 부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일제는 패망하고, 행정력의 공백 기간 중 공터였던 소개도로는 무허가 건물이 난립하였다. 특히 세운상가가 개발되기 이전 공지에는 종삼(鐘三)이라 불리는 퇴폐업소들이 있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이곳을 변모시키기 위해 전국 최초의 “재개발지구”를 지정하여 사업을 시행하게 된다.
- 1960년대 말 세운상가 전경. 주변대비 위압적 경관 때문에 얼마 못가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City in a city, 입체도시의 꿈 세운상가,
번영과 쇠락
김현옥 서울시장은 당시 군사정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던 젊은 건축가 김수근에 이 재개발지구의 계획수립을 의뢰하였고, 김수근은 당대 최신 건축사조인 ‘용도복합’, ‘보차분리’ 등의 신개념을 적용해 폭 50m, 4개 구간으로 나눠진 남북길이 1㎞ 거리를 입체보행자도로로 연결하고, 당시로선 높았던 용적률 300%에 “City in a city” 개념하에 저층부 상가·상층부 주거의 기본 개념에 동사무소, 파출소 같은 공공시설은 물론 옥상 내 학교까지 도입하는 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이를 시행하겠다는 민간사업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아 8개 사업자가 구간을 나눠서 사업을 시행하였다. 이 때문에 최초 계획과는 달리 공공시설은 전혀 설치되지 않았고, 입체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콘셉트인 3층 레벨의 보행자도로는 남북방향으로 모두 연결되지 못하며 완벽한 보차분리가 이뤄지지 않아 지층 레벨에서도 보행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세상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의 세운상가는 1960년대 말 준공 이후 최신식 상점, 도심 내 우수한 접근성 등의 장점에 힘입어 당시 최고급 주거지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인근 신세계백화점 등의 새 단장과 1980년대 용산 전자상가 조성 이후 상권은 완전히 넘어갔으며, 강남 압구정 등의 조성 이후 고급 주거지로서 명성을 잃게 되면서 세운상가는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전면 철거 vs. 존치, 한국 근대도시의 산증인
세운상가
구도심 종로 및 을지로의 쇠락 중심에 서 있었던 세운상가와 주변지역의 재개발 논의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비판의 핵심은 ⑴구도심 내 거대한 남북축 건물군의 위압감, ⑵종묘로부터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 단절, ⑶구도심의 주 흐름인 동서 방향에 반하는 남북축 보행자데크의 부적정성 등이었다. 이를 감안해 2000년대 말 수립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는 세운상가 내 기존 소유자 세입자 등을 주변지역으로 이전시키는 순환재개발 방식을 적용하여 세운상가군을 전면 철거하고, 종묘로부터 남산으로 녹지축을 연결하는 이상적인 계획이 마련된다.
이에 2009년, 종묘에 인접한 현대상가 건물군이 1천억 원 이상의 비용으로 철거된 후 ‘초록띠공원’(이후 “다시세운광장”으로 개조)이 조성되었고, 향후 이 투입비용은 연접지역 개발로 회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변지역 고밀개발시 종묘의 문화적 경관이 훼손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기 등재된 종묘가 유산목록에서 삭제될 수 있다는 ICOMOS(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측 경고와 문화재청 등의 문제 제기, 그리고 천문학적인 보상 비용과 복잡한 권리관계로 인해 잔여 구간의 철거 계획은 철회됐다.
이후 보완 수립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2014)을 통해 세운상가군을 존치하기로 결정한 후 창조문화산업의 중심지로 조성되고, 주변 지역은 주민 필요에 따라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어 2021년 현재 세운상가군 상당 부분이 이미 새단장을 마쳤다. 나아가 김수근이 최초 제안했던 공중보행교의 개념도 부활되어 금년 내 공사가 완료될 예정인데, 당초 세운상가 전면 철거 후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녹지축의 개념은 공중보행교의 신설로 부활한 셈이다. 이 입체시설물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큰 효용가치를 제공해 줄지는 앞으로 관찰해 봐야할 것이다.
뒤늦은 재평가와 한국 도시 근대성의 보전
한 건축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 박정희의 근대화 열망,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추진력, 건축가 김수근의 실험 정신”으로 탄생한 이 세운상가는 없어져야만 할 흉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20세기 건축도시 분야 거장인 프랑스 르 코르뷔지에, 그에 영향을 받았던 일본 최고 건축가 단게 겐조로부터 사사받은 김수근의 실험정신이 적용된 세운상가는 최근에 들어서야 당대 세계 건축의 메가트렌드와 궤를 함께했던 사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20세기 대한민국의 근대건축 유산으로서 세운상가가 존치되었음은 도시 자체로서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현대도시로서의 역사성이 부족했던 우리를 위해 다행스러운 결정인 듯하다. 그간 숱한 정치적 니즈에 의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앞으로는 근대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 리모델링 이전 접근이 어려웠던 옥상에서 서울 구도심을 전망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 서울도시계획이야기 1권, 손정목(2003)
- • https://seoulsolution.kr/ko/content/세운상가-조성계획-세운상가-건립과-재생
- • 서울특별시 도시재생지원센터 https://surc.or.kr/ur_ tours/47
- • https://love.seoul.go.kr/asp/articleView.asp?intSeq=6644
- • 이미지출처 : 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