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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인을 위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③
한강변 고급 주거지의 원류는 LH로부터
- “한강 종합 개발”- 글. 최성원(글로벌사업처 차장)
- 한강 개발 이전 한강의 유로와 지금의 한강을 단순 비교만 해도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일컫는 ‘한강의 기적’은 도시개발적 측면에서도 유효한 표현이다. 초기의 한강 모습에서 현재 고급 주거지의 한강변으로 변모하기까지 한강 종합 개발 스토리를 소개한다.
- 서울도시계획가로망도(1953)
한강 개발 이전 서울의 한강변
한강 상류 댐 건설 이전 한강은 홍수기와 갈수기 유량 차이가 엄청난 하천으로, 특히 1925년 대홍수로 인해 남대문까지 물이 찰 정도였다. 일제는 이후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원효로, 노량진, 영등포 등지에만 부분적으로 제방을 쌓았지만 이것으로는 근본적 홍수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강변도로 건설
1962년부터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는 동시기 탄생한 건설부 주도의 다목적댐 건설이 포함되어 한강 상류인 소양강댐과 충주댐이 건설됨으로써, 1980년대부터 서울지역에는 더 이상 심각한 수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한강의 수량도 일정하게 유지됐다.
서울에 수많은 외형적 변화를 주도했던 김현옥 서울시장(1966~1970)은 수송장교 출신답게 도로건설을 재임기간 동안 꾸준히 추진했다. 그 일례로 청계고가도로, 강변도로(현재의 강변북로) 건설은 당시 서울시의 차량보유 대수를 감안하면 당장 시급한 사업이 아님에도 불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그는 ‘각하의 신속한 이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1968년 제방건설사업과 연계해 전국 최초의 유료도로인 강변1로를 개통하기에 이른다.
- 강변1로 유료 고속도로(한강대교-김포대교 구간)
한강 개발 계획과 강변지역의 개발
김현옥 시장은 신설 제방도로와 기존 침수지역 사이 개발가능한 땅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게 되자, 제방도로 건설 후 조성된 내부택지(제내지)의 매각대금을 다음 제방도로 축조 자금으로 충당하고 남은 돈을 주택건설 및 시민복지사업에 투자하는 개념의 ‘한강 개발 계획’ 수립을 지시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공유수면 매립사업’이라는 새로운 이권사업이 활성화되는데, 민간 건설사는 제방도로 및 제내지의 기본 인프라 조성 후 이를 정부에 이관하는 대신 신규택지의 소유권을 가짐으로써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군장성, 국회의원, 각종 이권단체 등을 통한 비리발생은 물론 당시 정권을 위한 정치자금 확보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동부이촌동과 주공아파트
동부이촌동은 1956년 대선 청중유세 시 인파 30만 명이 몰려들 정도의 큰 백사장이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공유수면 매립공사는 수자원공사가 시행, 12만 평 매립 후 9만 평의 제내지가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 대부분은 주택공사가 매입하여 공무원 아파트 및 한강맨션아파트 등이 건설된다. 당시 주공의 사장 장동운 총재는 1968년 일본 출장 중 수많은 맨션 분양 신문광고를 보며 주공도 서민아파트만 공급할 것이 아니라 생활수준을 감안한 다양한 규모의 아파트 건설의 필요성을 느꼈고, 1970년대 초 고급아파트 건설에 선뜻 나설 민간사가 없었던 탓에 주공이 직접 27~57평에 이르는 대형 평형 위주의 아파트를 건설한다. 당시엔 서민아파트 공급담당 국영기업이 국민의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주공의 한강맨션은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대형화를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주거문화의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압구정 지구 & 반포지구
압구정 지구는 유달리 현대아파트가 많이 존재하는데, 이는 압구정과 옥수동 사이 저자도라는 모래섬에서 채취한 모래를 이용해 현대건설이 공유수면 매립면허 이전부터 압구정동 일원의 매립공사를 추진하여 해당지역 사업권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방내부 총 4만 8천 평 중 도로 제방 등 공공시설을 제외한 현대건설의 소유가 된 4만 3천 평 토지에 1970년대 후반 40~80평대의 대형 아파트가 공급되었고, 여기에 사회 각계 고위층이 입주하면서 점차 서울의 부촌으로 자리잡게 된다.
반포지구는 개발 이전 제방이 없던 곳으로, 삼부·현대·대림 3개사에 의한 공유수면 매립면허 이후 18만 평에 대한 공사가 진행되고, 이후 제내지 16만 평이 사업자에게 귀속된 후 일괄 주공이 매수함으로써 1974년부터 5~6층 규모 주공아파트 99동 3천6백여 가구가 건설됐다.
- 1975년 압구정 지구(출처 : 현대건설)
구의지구
뚝섬에서 광나루까지도 제방이 없던 구간으로, 현재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일대가 구의지구이다. 수자원공사가 추진하려던 사업이었으나 훗날 잠실개발을 고려 중이던 서울시가 매립토사 채취를 불허함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공사를 포기하였고, 이를 방치할 수 없었던 서울시는 제내지의 경우 관내 발생 연탄재 위주의 쓰레기로 매립을 진행, 안정화 기간을 거쳐 1980년대부터 민간주도로 아파트 건설이 시작됐다. 여담으로 2011년 발생한 구의역 테크노마트 건물 흔들림 현상이 크게 보도되었는데, 당시 건물하부 매립재 부실 등 기초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조사결과 에어로빅 이용자의 점프운동이 건물고유 수직진동수와 맞아떨어지며 공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 참고문헌
- • 서울도시계획이야기 1권, 손정목(2003)
- • 매일경제, [아파트 이야기] ⑤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첫 중산층 아파트(2009.06)
- • 오마이뉴스, 압구정은 똥이다(2017.08)
- • 이미지출처 : 서울시 및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