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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⑨

    잠실이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 잠실 개발

    • 글. 최성원(서울지역본부 차장)
  • 잠실 롯데월드 남측 커다란 석촌호수가 사실은 한강의 본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잠실은 어떤 이유로, 또 어떻게 개발되었으며 LH의 전신인 주택공사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개발 전 잠실섬, 그리고 광주대단지

여의도가 한강 가운데 두 개의 물줄기로 분리된 섬인 것처럼 개발 이전 잠실 또한 잠실섬으로 불리던 곳이다. 잠실의 지역명은 ‘누에고치를 기르는 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시대부터 서울 외곽 뽕나무밭이 밀집된 지역으로 알려진다. 당초 광주군 지역의 일부였던 잠실지역은 1960년대 초에야 서울시로 편입되었는데, 잠실 포함 송파지역 개발의 배경은 1960년대 말부터 서울 시내 무허가주택 이주촌으로 조성된 광주대단지(지금의 구 성남시가지)의 배후도시 기능을 위한 것으로, 이를 위해 공유수면 매립, 잠실섬 육속화, 잠실대교 건설 등이 추진된다. 지금의 롯데월드 부지 남측 두 개의 석촌호수는 개발 이전에는 한강물이 흐르던 곳으로, 그 중 일부를 막아 호수로 만들었다.

잠실 공유수면 매립과 롯데그룹의 등장

1960년대 강남지역의 공유수면 매립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건설업계에게 있어 잠실은 서울 내 마지막 공유수면 매립 가능지였다. 당초 서울시의 재정사업이었으나 당시 중앙정부는 비자금 수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민간 주도로 매립 공사를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현대건설 포함 5개 건설사로 이뤄진 컨소시엄은 1978년에 택지 75만 평 매립 작업을 완료하고 이중 공공시설인 11만 평을 제외한 64만 평이 건설사에 귀속됐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은 차기 아시안게임의 서울 개최를 고려해 잠실 일대에 종합운동시설 건립을 지시했다. 이때 운동장 등 대규모 공공시설용지의 확보를 위해 기존 토지소유주의 토지 위치를 최대한 변경하지 않는 근접환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아닌, 위치가 대폭 변경되어 환지가 이뤄지는 입체적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적용되었다. 이 때문에 감보율(원 토지면적 대비 환지 토지의 면적 비율)이 40%대에 이르렀는데, 건설사에 귀속된 64만 평의 토지 중 37만 평만 환지되었으나 중심상업지구 토지로 환지해주어 그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재건축 이전 잠실주공 1~4단지 전경. 사진 우측 상단이 석촌호수의 모습이다.

중심상업지구는 계획적 개발을 목적으로 서울시가 재매수했지만 사업자 공모에 당선된 율산그룹의 부도에 따른 계약 해제 이후 한양그룹에게 넘어 갔지만 한양그룹 역시 재무여건이 악화되어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던 롯데그룹이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해당 부지 일체를 1984년에 최종적으로 매수하게 된다. 이것이 잠실 일대에 롯데그룹 관련 건물이 즐비한 배경이다.
석촌호수 서측 지역은 서울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단일 건축물 기준 최대 규모인 롯데월드가 건설되었지만 호수 동측 부지는 국내 최고층 건물을 원했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바람에 따라 20년 넘게 나대지 상태였다. 이 부지는 2008년 MB정부에 이르러 롯데 측 비용으로 서울공항의 활주로 각도를 조정하는 것을 조건으로 국내 최고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게 된다.

근린주구 이론이 적용된 잠실지구

민간 건설사에 의한 공유수면 매립 및 토지구획정리사업 결과 집단체비지 35만 평이 확보되었다. 이 땅에 대해 “주택공사를 통해 이상적 주택단지를 조성하라”는 청와대의 지시로 아파트 단지 5개 블록이 계획되었다.
당시 국민들의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작은 평수에서 큰 평수로 옮겨가고 있음을 고려, 주택공사가 세운 당초 계획은 32~42평형의 중대형이었으나 ‘주생활을 호화롭게 하는데 주공은 앞장서지 말고 서울시민 각 소득계층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할 것, 그리고 서울시가 철거하는 무허가 불량지구 주민을 수용할 것’이라는 정부 지시에 따라 1단지부터 4단지까지는 7~15평의 소형으로 이뤄졌고, 이중 절반이 13평으로 구성되었다. 주택공사 입장에서는 소형 평수로 구성된 주공아파트 단지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연탄 대신 지역난방을 적용했다.
5단지는 1~4단지와 달리 아파트 건설기술에 있어 선도적 차원으로 지역난방 도입, 단열재 설치, 2중창 설치, 커뮤니티 시설 고급화 등 당시 공공·민간을 통틀어 최초로 도입된 기술이 많아 한국 아파트 건설 역사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또한 잠실지구는 반포주공아파트단지 등에서 도입되었던 근린주구 이론을 본격 적용, 녹지 네트워크 조성 및 오픈 스페이스 확보, 충분한 학교 계획으로 우수한 교육인프라 조성, 용도별·주거용지별 밀도 구분 등 도시계획적 차원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다만 이 잠실지구가 건설되던 시기는 1970년대 중반으로, 석유 파동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잠실이라는 입지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당초 철거민에게 공급하기로 예정된 13평형 이하의 신청률이 50%에 그쳤고, 특히 5단지의 경우 대거 미분양이 발생함에 따라 주택공사 직원이 입주자를 구해오거나 직접 매입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2022년 현재 잠실주공 1~4단지는 모두 고층·고밀 아파트로 재건축되었고, 5단지만이 재건축을 앞두고 있으며 우수한 주거환경 덕분에 매우 값비싼 주거지역으로 변모하였다.

근린주구 이론(왼쪽)과 잠실주공아파트(오른쪽) 비교. 1929년 미국의 도시계획가 클래런스 페리가 도시계획 이론의 고전으로, 초등학교 중심 반경 약 400미터를 근린(이웃 동네)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이론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수많은 주거단지 계획 시 각 지역 여건에 맞게 변형되면서 강력한 이론적 배경으로 적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 서울도시계획이야기 4권, 손정목 (2003)
• 이미지 출처 : 서울시 및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