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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트래블
  • 오래된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매혹되는 여행자들의 도시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The Spanish Apartment)>의 촬영지 바르셀로나(Barcelona)

    • 글. 정다운(여행작가) 사진. 박두산(사진작가)
  •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The Spanish Apartment)’는 에라스무스(EU 내 교환학생 제도)를 통해 스페인의 대학원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 프랑스인 청년 자비에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자비에와 함께 바르셀로나 거리를 걸으며 바르셀로나 1년 살이를 경험하게 된다.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많지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만큼 환상을 걷어내고 바르셀로나를 바르셀로나답게 보여주는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구시가지 라발지구의 풍경
  • 카탈루냐 광장
  • 카탈루냐 광장 근처의 쇼핑 거리
카탈루냐 광장에서 시작되는 여행

자비에는 작가가 꿈이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경제학과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 행을 결정한다. 어머니, 애인과 인사를 하고 파리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온 자비에가 공항에 도착해 숙소를 찾는 과정부터 오래된 아파트먼트에서 지내며 친구들을 사귀고, 사랑을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배경으로 차례로 그려진다.
자비에가 바르셀로나에 처음 도착한 곳은 카탈루냐 광장이다. 자비에뿐 아니라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공항에서 버스를 타면 이곳에 처음 내린다. 자비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숙소로 가는 길을 묻는다. 우리의 여행도 비슷하게 시작된다. 사람도 비둘기도 많고 차들도 쌩쌩 달리는 복잡한 광장에 큰 캐리어를 든 채 서 있자면 설레면서 동시에 당황스럽다. 하지만 반나절만 지나면 카탈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익숙한 장소가 될 것이다. 카탈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라 여행자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이곳을 지나가게 된다.
카탈루냐 광장에 서서 지도를 열면 바르셀로나 지리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일단 크게 주변을 둘러보며 애플스토어를 찾는다. 애플스토어 앞 넓은 도로가 ‘그라시아 거리’. 그라시아 거리는 바르셀로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가장 화려한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유일한 백화점인 엘 코르테 잉글레스 백화점을 비롯해 거리 양쪽으로 자라, 마시모두띠 등 스페인 브랜드부터 버버리, 로에베 등 명품 브랜드와 아디다스, 나이키와 같은 스포츠 용품매장 등 다양한 브랜드 매장이 즐비하다.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등 19세기에 지어진 ‘고급 주택’도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다시 카탈루냐 광장에 서서 그라시아 거리를 등지고 걸어 내려가면 ‘람블라스 거리’에 닿는다. ‘내려간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완만한 내리막길이기 때문이다. 람블라스 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거리로,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각종 거리 공연들을 볼 수 있어 그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축구팀 FC 바르셀로나가 우승이라도 하는 날이면 바로 이 람블라스 거리에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 나와 축제를 즐긴다. 람블라스 거리 가운데, 호안미로의 그림을 우연히 만나는 것도 이 거리를 걷는 즐거움 중 하나다. ‘유럽의 식탁’이라고 불리는 ‘보케리아 시장’도 바로 이 람블라스 거리에 있다. 거리의 끝까지 걷다보면 콜롬부스 동상이 있는 포트벨 항구에 닿는다. 자비에가 역사 속 인물 ‘에라스무스’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다. 포트벨 항구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몬주익 언덕까지 올라갈 수 있다. 자비에는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의사 장미셸의 아내 안네소피와 함께 이 케이블카를 탄다. 케이블카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해변이 바르셀로네타 해변. 자비에는 이 해변에 앉아, 파리의 애인 마틴느에게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를 쓰기도 했다.

“처음 가보는 도시에선 모든 게 낯선 법이죠.”
“어느 정도 살다보면 낯선 얼굴들 낯선 건물들도 익숙해지고, 여기 살면서 이 횡단보도를 백 번 아니 천 번쯤 건너보면 거리 이름들도 외우게 되겠죠.
언젠가 고향의 길거리들처럼 활보하게 될 거예요.”
여름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남편인 장미셸의 직장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온 안네소피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서 권태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자비에는 바쁜 장미셸 대신 안네소피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들을 여행한다. 그들의 여행은 마치 데이트 같다. 처음 그들이 함께 관광한 곳은 구엘공원. 구엘공원의 벤치는 이후 그들이 격렬한 첫 키스를 나누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구엘공원은 건축가 가우디의 마지막 작품이다. 애초에 공원이 아닌 주거단지로 계획된 곳으로,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벤치는 널찍한 광장을 둘러싸고 길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으며 타일을 깨서 다시 붙인 ‘트랜카디스’ 방식으로 디자인 되어 독특하게 아름답다. 또한 사람이 앉아서 쉴 때 편안하도록, 허리와 엉덩이가 닿는 부분의 곡선까지 신경 써서 만들어졌으니 이곳에 가면 엉덩이를 붙이고 허리를 세우고 꼭 앉아봐야 한다.
자비에와 안네소피는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인 성가족성당에도 함께 간다. 성가족성당은 건축가 가우디의 역작으로 1883년에 착공을 시작해 1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이다.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을 완공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조금더 미뤄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왕이면 완공 후에 가서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성당의 어느 순간을 목격하는 일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2000년 초반의 성가족성당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앨범에서 우연히 찾은 어린 시절 사진처럼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영화 속 성가족성당은 가우디가 살아생전 공사를 진행했던 탄생의 파사드만이 완공되어 채 반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지금은 반대편 수난의 파사드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건물 외벽에 하나하나 조각으로 표현한 성가족성당은 그 모습이 무척 압도적이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와는 전혀 다른 정취를 느끼게 된다. 마치 성스러운 빛이 쏟아지는 숲 속에 온 것 같은 경건한 기분이 든다.

“바르셀로나는 너무 더러워. 뒷골목은 꼭 후진국 같다.”
“그건 파리도 마찬가지.”
구엘공원의 벤치
골목을 따라 걸으며 친해지는 도시

카탈루냐 광장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 미리 정해둔 숙소를 찾아 가며 자비에는 말한다.
“처음 가보는 도시에선 모든 게 낯선 법이죠.” “어느 정도 살다보면 낯선 얼굴들 낯선 건물들도 익숙해지고, 여기 살면서 이 횡단보도를 백 번 아니 천 번쯤 건너보면 거리 이름들도 외우게 되겠죠. 언젠가 고향의 길거리들처럼 활보하게 될 거예요.”
낯선 도시에 도착한 이방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불안하고 긴장되지만, 이 감정은 모두 낯설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바뀐 후에는 바로 사라질 감정이라는 걸 여행자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이야기는 바르셀로나를 아주 잘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바르셀로나 풍경은 람블라스 거리도 카탈루냐 광장도 쇼핑몰도 가우디의 유명한 건축물들도 아니고 바로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들이다. 자비에가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영국, 스페인 등 다양한 국적의 룸메이트들과 함께 지내던 아파트먼트는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다. 그 오래된 아파트먼트를 중심으로 자비에는 바르셀로나 구석구석을 걷고 달리며 술에 취해 거리에 드러눕기도 한다.
바르셀로나는 웬만한 곳은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크지 않은 도시이다. 그래서 그 어떤 도시보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걷게 된다. 구시가지 보른지구부터 고딕지구, 라발지구로 이어지는 골목마다 볼거리가 많고, 중간중간 쉬어갈 의자도, 음료수를 사먹을 상점도, 카페와 바도 많아서 걷기에 참 좋다. 계속 걷다보면 처음엔 미로 같던 골목이 익숙해지고, 숙소까지 가는 길이 눈에 훤해진다. 그때부터 진짜 바르셀로나 여행이 시작된다. 어느새 숙소를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되고, 마치 바르셀로나와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시와 친구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바르셀로나에서는 일어난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서도 우리는 바르셀로나를 오래오래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안네소피는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걸으며 “바르셀로나는 너무 더러워. 뒷골목은 꼭 후진국 같다.”고 말한다. 그 말에 자비에는 “그건 파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바르셀로나 편을 든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르셀로나는 2000년대 초반의 모습이지만 지금 현재의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거의 다르지 않다. 밤이면 늦은 시간까지 골목의 바에서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골목 구석에 노상방뇨의 흔적들도 많다. 낡은 벽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안네소피와 비슷한 이유로 바르셀로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비에처럼 발끈하며 바르셀로나를 옹호할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날 것의 골목 풍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아직 공사중인 성가족성당의 최근 완공된 수난의 파사드
  • 구시가지 라발지구의 오래된 카페
TIP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도시 바르셀로나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바르셀로나는 크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는 다시 보른지구, 고딕지구, 라발지구로 나뉘며 이 중에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고딕지구이다.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700여 년 전 지어진 대성당과 시청 등 오래된 아름다운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낮에는 물론 밤에도 골목을 따라 걷기 좋은 곳이다. 신시가지는 19세기 후반 도시 계획에 따라 조성되었다. 건축가 일데폰스 세르다가 정사각형 모양이 반복된 ‘에이샴플라’를 구상한다. 에이샴플라에는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를 비롯한 당대 유명한 건축물들이 있다.
도시 곳곳에서 건축가 가우디뿐 아니라, 호안 미로, 피카소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바르셀로나는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도시로 예술가들의 작업실들이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으며 신진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숍도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바르셀로나는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활기찬 매력을 가졌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직항편이 생겼다. 약 13시간 정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