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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
- 글. 김경일(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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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상대편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행동을 ‘설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설득을 잘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설득을 잘 하려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까?

설득은 기술이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과 행동을 ‘설득’이라고 한다. 이 설득과 관련해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바가 있는데, 바로 ‘설득을 기술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설득을 기술로 생각하게 되면 결국 타인을 속이고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결과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기만이다.
따라서 설득에 있어서 ‘윈-윈(win-win)’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대를 다시 만날 수 있고, 다음 설득의 기회가 주어지니 말이다. 또한 설득의 최대 무기는 바로 진정성이다. 진정성이란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즉, 패를 숨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의외의 협상 게임 결과
설득과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를 한 가지 소개하려 한다. 독일 힐데스하임 대학의 캐슬린 카피스 박사 연구진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설득하고 협의하는 데 있어 젊은이들, 심지어 아이들이 훨씬 ‘윈-윈’에 능숙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다소 부족하고 덜 세련된 대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더 설득을 잘하는 걸까?
일단 이들의 연구를 살펴보자. 연구진은 청년(평균 23.5세)과 상대적으로 노년층(평균 71.9세) 각각 45명을 대상으로 쌍을 이뤄 협상 게임을 하도록 했다. 게임 속의 두 사람 모두 청년이거나 노인인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한쪽만 청년(즉 상대편은 노인)인 경우도 있었다. 연구에서 설정된 설득과 협상의 상황은 한쪽이 집주인이면 다른 쪽은 세입자다. 참가자들은 입주 날짜, 주방 기구 확충, 욕실 리모델링, 그리고 임대 기간 등 총 4가지 측면에서 협상을 벌이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설득했다.
당연히 참가자들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무엇은 덜 중요한가에 대한 우선 순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기초해서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항에 있어서는 내가 손해 보거나 상대방의 요구를 더 많이 들어준다 해도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항목에 있어서 많이 양보해야 한다면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협상 게임의 결과는 분명했다. 청년들끼리 협상을 한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양쪽의 모두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으며 균형도 이루었다. 양쪽 모두 만족도도 높았다. 협상 파트너가 청년-노인으로 이루어진 팀의 만족도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노인들끼리 협상한 결과가 가장 나빴다. 일단 협상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 즉 어느 한 쪽이 만족하면 상대방은 매우 불만족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양쪽의 만족도를 합산한 점수 역시 가장 낮았다. 즉 ‘윈-윈’과 가장 거리가 먼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이 결과가 ‘나이 든 사람이나 노인들은 비타협적인 욕심꾸러기다’라는 단순한 결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이런 결과가 왜 나왔는지 살펴보는 데 있다.

매끄러운 설득의 완성
연구진은 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상당히 중요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연령대가 협상을 하든지 자신의 우선 순위를 상대방에게 고집스럽게 숨기는 경우에는 연령을 불문하고 협상의 결과가 ‘윈-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설득이 쉽지 않았다고 응답한 것도 당연한 결과다. 자신의 선호도와 우선 순위를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니 상대도 이를 반영하는 대안을 내놓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양쪽 모두 이런 모습을 보이면 협상의 결과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결렬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경향이 노년층에서 더 높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결과가 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끼리 협상을 하더라도 패를 숨기면 ‘윈-윈’은 물 건너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득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노인들끼리라 하더라도 자신의 우선 순위를 솔직하게 공개하면 매우 수월하게 ‘윈-윈’에 도달했으며 설득도 쉽게 이루어졌다. 연구진은 매우 흥미로운 충고를 덧붙인다. 아무리 ‘윈-윈’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강하더라도 어쨌든 노인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젊은이는 자신의 우선 순위를 시원하게 공개하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측면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설득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면서도 품격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가 갖춰야 하는 두 마리 토끼다. 전자만 가지고 있으면 주책 맞은 사람이 되고 후자만 가지고 있으면 위선적인 사람이 된다. 어느 쪽도 설득에 유리할 리 없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역시, 설득은 기술이 아니며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서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