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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강원도 삼척
- 글, 사진. 채지형(여행작가) 자료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 사랑이 그리운 계절이다.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를 고르고 있을 때 친구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지금 또 보러 갑니다’라고. 그때 가을이 오면 친구에게 함께 보자고 했던 영화가 생각났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전자에 물을 올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계절에 딱인 감성영화
친구와 함께 ‘또 본’ 영화는 이장훈 감독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애틋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화면, 주연 배우의 열연으로 260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다. 장르로 보자면, 시공간을 넘어선 판타지 로맨스 영화라고나 할까. 세상을 떠난 후 다시 돌아온 아내와의 만남이라는 설정에, 손예진과 소지섭의 조합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했다.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일본에서 제작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영화 원작은 이치카와 다쿠지 작가의 소설에 기반한다. 일본에서 개봉 당시, 멜로영화 평점 1위를 차지하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포스터에 있는 ‘우리는 반드시 사랑을 하게 되는 그런 운명이었습니다’라는 대사는 세월이 흘러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그렇게 정해져 있어.


동화에서 기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리운 사람과의 기적 같은 재회를 보여주는 영화다. 시작은 아름다운 동화다. 하늘나라와 지상세계 사이 구름나라에 사는 엄마펭귄과 아기펭귄의 이야기로, 엄마펭귄은 구름나라에서 아기펭귄을 보며 그리워한다. 비가 오면 빗방울 열차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아기펭귄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비가 그치면 엄마펭귄은 다시 구름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슬픈 내용이다.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이 동화는 줄거리를 암시한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렀지만, 아들 ‘지호(김지환 분)’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비가 내리면 엄마도 집에 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아빠네 차를 세차하기만 하면 비가 온다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듣고서는 애먼 차에 비누칠을 잔뜩 해놓다 야단만 맞는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장마가 시작되고, 기적이 일어난다. 비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엄마 ‘수아(손예진 분)’가 지호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수아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호와 아빠 ‘우진(소지섭 분)’은 그런 것쯤 상관없다. 세 가족은 소중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며, 꿈같은 날을 보낸다. 옛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수아와 우진은 애틋한 마음으로 더욱 가까워지고, 사랑하던 때로 돌아간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수아의 기억이 돌아오고, 세 가족에게 헤어져야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보는 이까지 안타까웠던 순간, 한 손으로는 친구 손을 꼭 붙잡고 한 손으로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영화에서 눈물샘을 자극한 장면은 지호의 학예회 장면이다. 비가 그치면 엄마가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 지호는 엄마를 향해 고백한다. 계란 후라이도 잘 하고, 빨래도 잘 하고, 아픈 아빠도 잘 돌보겠다고.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가야하는 엄마 입장에서, 얼마나 가슴이 메었을까 가슴이 아팠다.
자극적인 내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슴슴한 맛의 영화지만, 블록버스터보다 장면 하나하나가 더 또렷하게 생각나는 이유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지고지순한 순정남으로 등장한 우진은 여심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멜로 여왕’으로 꼽히는 손예진은 설명이 더 필요없을 정도다. 귀여운 아내이자 따스한 엄마를 사랑스럽게 연기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 심포리역
영화를 본 후 강원도 삼척으로 향했다. 영화를 촬영한 곳은 국내 여러 장소다. 삼척을 비롯해 충북 영동, 대전, 인천, 수원, 서울 등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공간은 ‘심포리역’이기에 강원도로 발길을 재촉했다.
심포리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굽이굽이 산길이 이어진데다, 안개까지 옅게 껴있었다. 심포리역은 폐역이라, 연결되는 도로가 없어 추추파크를 통해 들어가야 했다. 추추파크는 기차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영화 촬영 때 베이스캠프로도 활용된 곳이다.
이곳에는 기차를 숙소로 개조한 트레인빌이 있는데, 2번과 3번 사이로 내려가면 ‘<지금 만나러 갑니다> 촬영장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게 된다. 표지판이 알려준 길이 인도가 아니라 철로이기 때문이다. 추추파크에서 운행하는 관광열차 외에는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주의해야 한다.
몽글몽글해지는 장면들
엄마를 맞이하러 노란 우비를 입고 달려가는 지호의 마음으로 심포리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풀이 무성했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 앞에 도착하니 엄마펭귄과 아기펭귄 표지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펭귄이 빗방울 구름을 타고 도착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기차는 심포리역 앞에 서고 엄마펭귄은 내려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기 펭귄에게 다가간다. 수아가 기차에서 내려 마음 앓이 하던 우진에게 안기며 “아무 걱정 하지 마. 우린 잘 될 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어.”라던 대사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변에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마음은 한없이 몽글몽글해졌다.
심포리역은 영화에서보다 더 낡은 상태였지만, 영화를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역 앞에는 영화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었고, 역사 외벽에는 영화의 여러 장면이 붙어 있었다. 수아와 우진의 버스 장면을 함께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앞에는 수아가 사라졌을 법한 가늘고 긴 철길이 이어져 있었다.

추추파크의 스위치백 열차
심포리역 외에도 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추추파크의 숙소 중 하나인 네이처빌이다. 촬영당시 배우들이 머물던 숙소로, 문 앞과 방 안에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았다. 심포리역에서 영화를 충분히 회상한 후에는 추추파크를 구석구석 둘러본다. 산 속에 우뚝 서 있는 유럽풍 건물도 멋지지만, 이곳에서 꼭 타 봐야할 기차가 있다. 바로 스위치백 트레인이다.
스위치백 트레인은 산악 지형에서 급경사 길을 오르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열차로, 지그재그 형태로 느릿느릿 달린다. 현재 심포리역 앞을 지나는 유일한 기차도 이 열차다. 지금은 관광형 열차로 운행되지만, 과거에는 영동선 일반 열차로 운영됐다.
삼척 도계역에서 태백 통리역까지는 국내 철도 노선 중 험한 축에 속하는 구간으로, 경사가 가팔라 열차가 한 번에 오르거나 내려가지 못해 스위치백 구간이 있었다. 그러나 2012년 루프 형태의 길이 16.7km의 솔안터널이 생기면서, 스위치백 열차가 사라졌다. 이후 추추파크가 생기면서 열차는 부활했다. 스위치백 열차는 추추스테이션에서 출발해 흥전삭도마을까지 약 16km를 평균 속도는 시속 25km로 왕복한다. 그 가운데 심포리역이 있다. 열차가 잠시 정차하는 흥전삭도마을에는 탄광 분위기를 살린 트릭아트 포토존이 있어, 마을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흥전삭도마을이 속한 도계는 국내 석탄산업 일번지로, 주민 대다수가 광산근로자였다. 거리에 전시된 사진으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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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전삭도마을에 있는 트릭아트 포토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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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백 트레인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따스한 색으로 물들다
추추파크 주변에는 국내외 유명 유리조형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도계유리마을이 있다. 직접 유리공예를 해볼 수도 있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옆에는 다양한 나무를 보며 만져볼 수 있는 나무나라도 있다. 석회질 성분으로 신비로운 에메랄드 물빛이 특징인 미인폭포도 멀지 않다.
트레킹 애호가라면 탄광 주지대인 삼척과 태백, 정선, 영월 4개 지대를 잇는 탄탄대로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추추파크를 지나 너와마을, 미인폭포로 연결되는 길로, 자연을 만끽하며 삼척의 특별한 문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천천히 가을이 물드는 속도에 맞춰 자연 속에 잠겨 보면 어떨까. 영화만큼이나 모두의 마음이 따스한 색으로 물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