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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H 주거생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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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국민임대 주거생활이야기 수기 공모> 대상
행복한 내 인생을 함께한,
앞으로도 함께할 동반자- 글. 황*웅
-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민임대 입주 20주년을 기념하여 10월 1일부터 29일까지 LH 국민임대주택 입주자와 주거행복지원센터(관리사무소) 직원을 대상으로 LH 국민임대주택에서 경험한 생생하고 감동적인 체험 수기를 공모했다. 이 번호에서는 <LH 국민임대 주거생활이야기 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입주민 이야기’를 소개한다.
결혼·신혼집, 내게 너무 높은 담장
어느 덧 추운 바람이 거치고 따사로운 햇살의 봄이 다가온다. 하지만 나와 내 여자친구가 함께 맞이하는 다섯 번째 봄 햇살은 남들처럼 따사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다. 벌써 5년째를 맞이하는 우리의 연애달력은 어느덧 결혼이라는 마침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신혼집을 구해야 되는 막막함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전세를 구해볼까? 아파트는 비싸겠지? 대출은 얼마나 나오려나?…’
하루이틀 시간이 흘러 결혼날짜가 다가올수록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져 간다. 우리의 미래를 시작할 수 있는 ‘신혼집’을 구하지 못한 채 ‘ 상견례’를 하는 나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다. 너그러운 양가 어른들 덕분에 한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한 신혼집의 문턱은 너무나도 높다.
아파트 값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전세 값에 다시 놀라고, 대출이자에 온몸의 힘이 빠진다.
‘부모님 품에서 지내다가 분가하고 또 새 가정을 꾸린 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우리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우리 부모님은 왜 철수처럼 집 한 채 못해 주실까.’
부자처럼은 아니어도 남들만큼 평범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나에게 물려줄 것 하나 없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공존하는 감정교차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보통사람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결혼, 특히 신혼집의 문턱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이 불공평한 것 같은 마음까지 든다. 무엇보다 신혼집이라는 것도 구하지 못하는 나라는 남자친구와 ‘결혼’이라는 연애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월급의 7할 이상을 저축해 가며 알뜰살뜰 5년이란 시간을 함께해준 여자친구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우리 사회, 나의 부모님,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기 벌써 수개월이 흘러 결혼이라는 D-day는 6개월 안으로 좁혀진다. 나는 오피스텔, 주택, 아파트… 전세, 월세, 반전세…. 집이라면 가리지 않고 방방곡곡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의 성실함과 형편을 딱히 여겨 내 손을 잡아주는 구세주는 나타나질 않는다. 어느 덧 신혼집이란 녀석은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좌절을 안겨준 내 생에 ‘유일한 놈’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국민임대, 새로운 나의 모습과 꿈의 실현
좌절의 연속이 계속 되던 어느 퇴근길. 어느새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은 버스 차창 밖 불공평한 세상 속에서 희망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LH 미사13단지 국민임대 입주자 모집”
사실 내가 평생 살아온 이곳은 미사지구라는 신도시가 개발되고 있는 중이어서, 항상 지나가는 버스 출퇴근길에 위치한 LH 건물에는 늘 광고 게시물이 걸려 있었다. 몇 억 원씩이나 하는 집을 살 수 없는 내 형편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터라 늘 스쳐지나 보내던 현수막이었지만, ‘임대’라는 문구는 왠지 모르게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스마트폰을 두들겨 ‘LH국민임대’가 무엇인지 알게 됐고, 깨알같이 적혀있는 입주자 공고문을 출력해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역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난 겨우 4점이네.’
‘LH국민임대’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이번엔 만족하고, 경험삼아 지원이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무언가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서류를 제출하라는 안내 문자가 내 핸드폰에 떴다.
‘어라?! 그래. 서류 제출이라도 경험하는 게 어디야.’
당첨에 대한 기대는 1%도 없이 경험삼아 서류를 제출했다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는 이 마음, 뭐지. 이상하게 하루하루 합격자 발표일이 기다려졌다.
7월17일. 이른 퇴근길 지하철에서 받은 당첨문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날 수많은 인파속에서 흘린 눈물은 그동안 내가 넘지 못한 신혼집이라는 문턱에 대한 도전과 좌절, 큰 벽을 허물어 냈다는 성취감 등 수많은 감정이 녹아내린 듯했다. 그동안 나를 감싸왔던 부정적인 감정이 기쁨과 감사의 긍정에너지로 바뀌고, 결혼을 통해 새로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열망, 기대, 환희에 찬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층간소음, 아파트 거주 새내기가 받은 감사의 선물
아파트에 처음 살게 된 내게 국민임대 생활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쓰레기 분리수거, 관리비 납부, 정기 소독…. 그중에서도 어린이집 아이들의 재잘재잘 소리는 행복한 웃음을 안겨주는 신비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우리 집은 2층이라 단지 내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종종 들려온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행복하고 즐거움만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수면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낮에도 잠을 자야 한다. 하지만 뉴스로만 접하던 ‘층간소음’이란 것이 내 귀로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낮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내가 이해해야지!’
이해를 하면 할수록 층간소음은 나에게 점점 더 크게 다가왔고, 어느덧 밤 10시를 넘긴 시간까지 지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정신건강과 모두의 안녕을 위해 이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확실하겠지? 관리실에 전화를 해야 하나? 메모를 남길까? 인사도 할 겸 직접 가볼까? 예의가 아니려나? 무서운 분이 나오면 어쩌지?’
아파트에 처음 거주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메모를 남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손 편지를 곱게 적어서 최대한 예의 바르게 윗집 문에 붙여 놓았다. 다음날 우리 집에도 메모가 붙었다. 윗집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께서 혼자 사신다는 문구였다. 너무나도 죄송했다. 이럴 수가…. 나의 머리가 하얘졌다. 그럼 어디 일까? 우리집은 206호. 나는 306호, 305호, 307호 순서대로 메모를 붙였지만 나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정답은 205호, 옆집이었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이럴 때 나오는가 싶었다. 늘 인사하고 다니던 옆집 두 돌 아기의 발걸음이 원인이었다. 윗집 분들한테는 너무 죄송해서 땅이라도 파서 숨고 싶었고, 나를 보고 웃어주는 옆집 꼬마에게는 자동반사로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난 깨달았다.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웃사촌이 이런 의미구나.’
나는 윗집 분들에게 작은 다과로 죄송한 마음을 전달해 드렸고, 옆집 아기에게는 늘 미소와 인사로 이해의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나는 옆집 분들과는 종종 과일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윗집 분들과는 현관에서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여쭐 수 있는 이웃사촌이 될 수 있었다.
뉴스에 종종 무서운 일들의 원인이 되는 층간소음이 나에게는 이웃사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줬고, 많은 좋은 분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되어 아파트 새내기인 내게 좋은 선물이 됐다.
LH, 앞으로도 함께할 나의 동반자
나는 1.5룸의 36형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나와 아내의 아파트 생활도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러 슬슬 적응이 되고 있고, 우리의 행복과 감사의 마음이 하늘에 전달되었는지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들어섰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고 이곳에 살게 되면서 너무나도 감사한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 뱃속 아기가 커갈수록 짐도 늘어나니, 아기를 키우기에는 집이 좀 작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우리 아기가 태어나 들뜬 마음으로 출생신고를 위해 동사무소를 들렀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출생신고는 다 되셨고요, 미사 13단지 46형 예비자로도 넣어드릴게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확인하고자 당장 LH에 전화를 걸었고,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자녀수가 늘어날 경우 동일 단지 내에서 보다 큰 평수 예비자로 넣어준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처음 당첨소식을 들었을 당시 흐르던 눈물이 또다시 나왔다. 동사무소 문 앞에서 말이다.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감사한 일이 생기는지.
‘우리 아기가 복덩어리구나.’ 결국 우리 가족은 4년의 36형(1.5룸) 생활을 뒤로하고, 바로 옆 동에 위치한 46형(2룸)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는 중이다. 사실 46형도 일반 아파트들(59, 74, 84형)에 비하면 작은 평수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넓고 감사한 집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니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기더니, 급기야 아내가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신혼희망타운(공공분양)에 당첨이 된 것이다. 나는 임대주택에만 관심을 갖던 터라 내가 모르던 신혼희망타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아내가 지원하고 덜컥 당첨이 돼버렸다.
‘Oh, my God.’ (이건 정말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당첨의 기쁨도 잠시. 나는 분양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양가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해 금전적인 부담을 덜 수 있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고, 현재 22년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내가 인생사를 쓴다면 LH를 빼고는 적을 내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마련… 이 모든 것이 LH와 함께 이룬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을 훔치다가, 이웃사촌들과 함께 혹독한 아파트 새내기 생활을 경험하다 보니, 어느새 아기에게 방을 선물해 주는 든든한 아빠가 되어 있었고, 아기가 뛰어다닐 즈음엔 보다 넓은 진짜 우리집을 꾸며줄 수 있는 가장이 될 수 있다니, 감동이 아닐 수가 없다.
가족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장소는 우리 주변에 있다!
나는 정말 영화같이 운이 좋았다. 결혼 직전에 국민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었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아기 성장에 맞추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는 이게 말이 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이지 현실이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해 본다면 내가 겪었던 일들은 내가 아닌 누구나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목표를 위해서 도전할 때 작은 것, 쉬운 것, 기초 작업과 같은 것들을 먼저 실현해 나가지 않을까? 집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내 집 마련에 집중하기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도전하고 노력하다 보면 누구든 목표에 도달하는 날이 온다고 확신한다.
즉, ‘꼭 내 집을 갖겠다’보다는 ‘가족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장소’에 초점을 두고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한다면, 국민임대, 공공임대, 공공분양, 민간분양 등 어떤 것이 됐든 언젠가 선물은 도착할 것이고, 그것이 언젠가는 가정의 행복을 이루게 해주는 본인의 집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