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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가‘오징어 게임’ 신드롬, 그 이유
- 글. 정덕현(칼럼니스트) 사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위트홈>, <킹덤>, 영화 <미나리> 캡처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놀이를 하는 풍경들이 벌어진 것. 과연 이러한 신드롬은 왜 벌어진 것이고, 그것이 향후 K콘텐츠 전반에 미칠 영향과 남은 숙제들은 무엇일까.
넷플릭스 사상 최고 기록 남긴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가장 많이 본 TV시리즈가 됐다. 넷플릭스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의하면 <오징어 게임>은 시리즈를 시작한 9월 17일부터 11월 초 기준 여전히 전체 TV시리즈 중 1위다. 넷플릭스 측이 공식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1억 4천 2백만 이상의 넷플릭스 시청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봤다고 한다. 이전 시청가구수 1위였던 <브리저튼>이 약 8,200만 가구가 시청한 시리즈였던 것을 떠올려보면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구가 <오징어 게임>을 봤다는 이야기다.
평가도 호평 일색이었다. 미국의 비평사이트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100%를 기록했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넷플릭스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매체 RTL은 “K드라마의 고전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당신의 신경을 자극할 훌륭한 시리즈”라고 호평을 내놨고, 스페인의 시네마 가비아는 “최근 센세이션을 일으킨 한국 시리즈.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을 스릴러 장르로 파헤친다”고 평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졌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전 세계에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확산된 것.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영희 인형을 세워 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외국인들의 풍경이 전 세계 곳곳에서 등장했고, 달고나 게임은 상품 패키지가 되어 이베이 같은 해외 쇼핑몰 사이트에서 팔려나갔다. 극 중 인물들이 입었던 트레이닝복이나 <오징어 게임>의 상징이 된 ○△□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도 캐릭터 상품으로 팔려나갔고, 급기야 10월 31일 할로윈데이는 <오징어 게임>의 코스튬이 장악했다는 외신들도 쏟아졌다. 신드롬은 중국처럼 넷플릭스 서비스가 차단된 곳까지 번져나가, 더우반 같은 중국 평점 사이트에 <오징어 게임>이 영화, 드라마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됐다.
놀라운 것은 이로써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얻은 엄청난 가치다. 지난 10월 16일 블룸버그 통신은 넷플릭스 내부문건을 분석해 <오징어 게임>이 만든 임팩트 밸류가 약 9억 달러(약 1조 원)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이 가치는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그간 하향세였던 넷플릭스 구독자 증가세가 하반기에 이어 급격한 상승세를 기록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올 상반기 신규 가입자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2,590만 명에 태부족인 550만 명으로 하락해 위기설까지 나돈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이후 가입자가 빠르게 늘면서 3분기에만 438만 명이 늘었고 4분기에는 85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이 신드롬을 만든 걸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걸까. 신드롬에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과 차별성, 그간 꾸준히 좋은 성과들을 냈던 K콘텐츠의 성장과 진화, 그리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와의 협업을 통해 가능해진 시너지 등이 겹쳐져 있다.
먼저 <오징어 게임>의 콘텐츠 경쟁력을 들여다보면,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힘은 이미 해외에도 익숙한 데스 서바이벌 장르를 가져오면서도 그 안에 차별적인 요소들을 담았다는 점이다.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456명이 각각 1억 원씩 매겨진 목숨 값 총 456억 원을 두고 최후의 1인을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 이런 장르는 한국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헝거게임>이나 <배틀로얄> 같은 작품들로 익숙하다. 특히 일본은 <배틀로얄>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 <신이 말하는 대로>, <아리스 인 보더랜드> 같은 일련의 유사 장르 계보가 이어져 왔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 일본의 데스 서바이벌 장르들은 <오징어 게임>만큼의 성취를 거두지 못했을까. 특히 작년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당시에는 소소한 반응만 일으켰고, 오히려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을 일으킨 후 플릭스 패트롤 순위 톱10에 오르는 역주행(?)을 기록한 바 있다.
여기에는 같은 장르를 가져와도 운용을 달리함으로써 색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K콘텐츠만의 힘이 들어 있다. <오징어 게임>을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 비교해 보면, 게임 소재와 게임을 통해 담으려는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오징어 게임>은 구슬치기나 줄다리기 같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들을 내세운 반면, <아리스 인 보더랜드>는 따라할 수 없는 복잡한 게임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오징어 게임>의 관심사가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 달리 게임 자체가 아니라 그 게임의 살벌한 법칙이 은유하는 세상이고 이를 통한 냉소와 풍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이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신드롬과 유사하다는 외신들의 평가가 나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쟁사회,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적나라하게 꺼내놓은 것에 전 세계 젊은 세대들이 열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한 공감대는 이 살벌한 게임판에 들어가는 인물들에 대한 감정적 몰입을 통해 더 극대화됐다. <오징어 게임>이 여타의 데스 서바이벌 장르와 다른 건, ‘어쩌다 갇히게 된 인물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게임 참여를 선택한 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바깥세상이 더 지옥이라며 게임에 참여한 이들은 그래서 저마다 경쟁사회가 만들어 내는 상처와 아픔들을 게임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따라서 게임은 단순해도 그걸 치르는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이 더 강렬해진다. 외신에서는 이런 요소를 ‘감정적 펀치를 날린다’고 표현하면서 K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K콘텐츠들의 일관된 성취와 글로벌 플랫폼
그런데 이러한 똑같은 장르를 가져와 우리만의 색깔이 들어있는 작품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오징어 게임>만이 아닌 K콘텐츠들이 일관되게 갖고 있는 특징들이다. 예를 들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패턴을 가져와 빈부의 계급으로 나뉜 두 세계의 부딪침을 지상, 반지하, 지하라는 한국적 공간으로 풍자해냄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은희 작가의 <킹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좀비 장르의 서사를 가져와, 조선시대라는 시공간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독특한 차별점을 만들어 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글로벌하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장르는 이 특징이 집약된 것)과 그 로컬만이 가진 문화적 특수성이 적절히균형을 이룬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로컬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면서도 글로벌하게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전략과 딱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넷플릭스는 일찍이 ‘로컬의 글로벌화’를 그들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바 있다. 즉 로컬 콘텐츠 제작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 지역의 색깔이 분명한 콘텐츠들에 투자한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될 수 있는 방식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다.
K콘텐츠는 그런 점에서 최적이었다. 사실상 내수 시장으로는 제작비를 건지는 것도 빠듯한 현실 속에서 K콘텐츠는 늘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미국 같은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렌드에 예민하게 대응해 왔다. 즉 어떤 면에서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재편되는 영상 시장에 K콘텐츠는 일찍부터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만나면서 단기간에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석권, <기생충>에 이은 <미나리>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그리고 <킹덤>, <스위트홈> 같은 일련의 K드라마의 성취 위에 정점을 찍은 <오징어 게임>이 보여주듯 K콘텐츠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이 높아진 위상은 그만한 숙제들도 남겼다. 가장 시급한 숙제는 이번 <오징어 게임>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한 ‘재주는 K콘텐츠가 넘고 수익은 글로벌 플랫폼이 가져가는’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하는 일이다. 넷플릭스는 총 제작비 253억 원을 들여 1조 원의 가치를 가져갔지만, <오징어 게임> 제작사는 제작비 이외의 보너스 수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가사업 등을 할 수 있는 IP(지적재산권)도 모두 넷플릭스 소유다. 갑작스레 벌어진 엄청난 신드롬에 의해, 이런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콘텐츠 경쟁력을 입증한 국내 제작사들은 이제 <오징어 게임>의 성취를 통해 그런 주장이 가능해지게 됐다. 또한 그간 ‘가성비 높다’는 말로만 상찬되던 K콘텐츠 제작비의 ‘현실화’도 필요해졌다. 이 현실화를 통해 ‘가성비’로 치부되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온 스태프들의 노동비 또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간 ‘코리안 스탠다드’ 로 유지되어 왔던 제작현실을 이제 글로벌 위상에 맞게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더불어 우리도 K콘텐츠의 경쟁력을 토대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는 토종 플랫폼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로 제시됐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의 ‘오징어 게임’은 본격화됐다.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생존게임 속에서 K콘텐츠는 과연 어떤 결과를 낼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앞서 제시한 숙제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그 미래는 밝을 것이다. 생존을 넘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