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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에 가면
나만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날 수 있다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촬영지, 아바나(Havana)
- 글. 정다운 사진. 박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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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1999년에 제작되어 2001년에 처음 국내 개봉했다.
그리고 2005년과 2015년에 재개봉되기도 했으며, 2021년 9월에는 밴드 결성 25주년을 기념해 특별 상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다큐멘터리이자, 음악 영화이며, 음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쿠바를 꿈꾼다.
이보다 더 쿠바를 잘 보여주는 영화는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 음반사 월드서킷의 프로듀서 닉 골드의 제안으로 라이 쿠더는 서아프리카 뮤지션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기 위해 쿠바로 간다.
모히또, 시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 아바나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오비스포 거리’에는 수많은 호객꾼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걸음마다 여행객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레퍼토리는 뻔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모든 걸 가지고 있어. 그러니 뭘 원하는지 말해줘. 모히또? 코히바(시가 브랜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술, 담배, 음악. 쿠바를 찾은 관광객이 원하는 세 가지를 호객꾼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술 중에서도 모히또, 담배 중에서도 시가, 그리고 음악 하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따라붙는 호객꾼을 애써 외면하다가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말이 들리면 나도 모르게 반응하게 된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날 수 있어?” “그럼, 우리 삼촌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인걸.”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다. 아바나 거리의 수많은 공연장과 라이브 바 입구에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가 아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밴드이고, 앨범과 영화의 제목이지만, 쿠바인들에게 그것은 음악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쿠바 음악은 모든 곳에 있고, 특정인만이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든 쿠바 사람이 생활 속에서 즐기는 것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더이상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운명처럼 시작된다. 미국의 유명 음반사 월드서킷의 프로듀서 닉 골드의 제안으로 라이 쿠더는 서아프리카 뮤지션들과 함께 음반을 만들기 위해 쿠바로 간다. 하지만, 녹음을 하기로 한 뮤지션들의 비자에 문제가 생겨 프랑스 파리에서 쿠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작업이 불가능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쿠바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라이 쿠더는 현지의 뮤지션을 모아 작업을 해보기로 하고 쿠바 곳곳을 수소문한다. 한때 유명한 가수나 연주자로 활동했지만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뿔뿔이 흩어져 생활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둘 아바나의 녹음실로 모인다. 그들은 생계 때문에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구두닦이, 이발사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며 음악을 곁에 두고 지냈다. 그렇게 갑자기 모인 사람들이 단 6일 동안 녹음한 음반이 그래미 어워드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무려 800만 장 넘게 팔리게 된다. 그야말로 초히트를 친 것. 유명해진 그들은 농담처럼 말하던 ‘꿈의 무대’,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들이 음반을 녹음하고,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눈과 귀로 즐길 수 있는 공연 실황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뮤지션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들려주는 부분이다. 집에서, 거리에서 그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공간에서 노장들은 자신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내 이름은…” 이름과 나이, 고향으로 시작된 각자의 이야기는 쿠바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아바나 거리에서 만난 또 다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에는 1990년대 후반의 아바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20여 년 전의 아바나는 놀랍게도 지금의 아바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손대지 않은 낡은 건물과 거리에 가득한 올드카는 시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쿠바만의 매력이다. 그러니 영화 속 거리를 보며 내가 찾았던 아바나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많은 뮤지션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영화를 통해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아바나 거리와 쿠바 뮤직은 세월을 비껴가 존재한다. 그래서 아바나를 걷다보면 시간 여행 중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살아 숨 쉬는 그들을 당장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만다.
아바나 거리를 걷다가 창고 건물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가만히 봤더니, 곧 건물 안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저마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이 영화 같은 광경이 아바나에서는 흔하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에서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거리를 걸으며 흥얼흥얼 노래를 시작하자, 길에 있던 낯선 사람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걷는 장면은 마치 영화적 연출 같지만 사실은 가장 아바나다운 모습이다.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찾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아바나에서는 골목마다 거리의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다. 골목을 옮겨다니며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바나에서는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이렇듯 음악이 없는 쿠바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쿠바에서도 음악이 멈춘 적이 있다. 당시 아바나에서 털털거리는 올드카로 6시간 거리의 트리니다드에 있었다. 트리니다드는 살사로 유명한 도시. 살사를 제대로 즐겨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도착한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어디에서도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 당시 쿠바 대통령이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친구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사망했고, 쿠바에서는 애도의 표시로 일주일간 춤과 음악 금지령을 내렸다. 음악이 빠진 쿠바라니,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 현실이 됐다. 골목을 돌 때마다 새로운 음악가가 거리에서 연주하고, 어느 곳에서나 음악이 흘러나와 어깨를 들썩이며 걷게 되던 도시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너무 낯설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음악을 뺀 쿠바는 더이상 쿠바가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연주가 시작됐다. 거리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쿠바는 그런 곳이니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속 사람들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이며 보컬인 꼼빠이 세군도는 1907년에 바닷가 마을 사보네에서 태어났다. 마음을 울리는 깊은 목소리를 가진 이브라힘 페레는 1927년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로 살았고, 음악을 그만둔 뒤로는 구두닦이 일을 했다. 1930년에 태어난 유일한 여성 멤버 오마라 포르투온도는 아바나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 피아니스트 루벤 곤잘레스는 1919년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나 9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녹음을 시작하기 전 10년의 시간 동안 그에게는 피아노가 없었다. 어린이 발레교습소에서 반주를 하며 피아노를 곁에 두었다.
생계를 위해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은 모두 쿠바인이고,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항상 음악을 곁에 두었다. 삶의 무게와 함께 더 깊어진 음악은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되었다.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 그들의 평균 나이는 70세. 20여 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관광상품이 되었다. 이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그들의 얼은 쿠바 곳곳에 살아있다. 그러니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떠올리며 쿠바 아바나로 여행을 간다면 그것은 옳다.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아바나 거리를 걷다보면 분명 나만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쿠바는 그런 곳이니까.
쿠바의 ‘쏜’을 아시나요?
남미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이고 브라질이 쌈바라면 쿠바는 ‘쏜’이다. 쏜의 원형은 아프리카에서 왔다. 이후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리듬감 넘치며 동시에 멜로디가 살아있는 쿠바 음악 쏜이 되었다. 쿠바 음악의 황금기였던 쿠바 혁명 이전부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지나 현재까지도 쿠바의 음악은 쏜으로 설명된다. 쏜을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인 꼼빠이 세군도와 이브라힘 페레르, 그리고 오마라 포루투온도가 있다. 지금 당장 쿠바로 떠날 수 없다면, ‘쿠바 쏜’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