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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인사이트
  •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이유

    • 글. 김경일(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우리나라처럼 세대 소통이 늘 이슈가 되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노년층을 향하고 있다는 베이비부머 세대도 그 선배 세대와 1980년대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 1970년대생으로 대변되는 X세대 역시 그 명칭이 거론되기 시작하자마자 기성세대의 혀를 차게 만들었다. 이후 이어받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그리고, 앞으로 사회에 나올 알파 세대까지의 이야기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세대 간 소통의 어려움이나 갈등은 왜 일어날까? 이의 해법은 무엇일까?

지난 수십 년간 이렇게 세대 소통과 갈등에 관한 이슈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만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심리학자들은 역설적이게도 이를 다른 세대를 ‘직면’하고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직면(直面, Confrontation)이란 무슨 뜻일까? 심리학적으로는 ‘상대를 도우려는 착한 동기를 가지고 상대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문제점을 알아차리도록 깨우쳐주는 것’을 의미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문제를 그냥 덮어 두지 않고 직면해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한국의 문화는 관계주의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와 같은 사회 심리학자들이 자주 언급하고 있는 한국 문화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점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와 직결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은 관계주의이며 일본은 집단주의다. 즉 우리나라가 집단주의라는 관점은 매우 단순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 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집단주의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자신의 자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집단의 이익과 규칙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위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국가나 회사와 같은 집단을 자신의 가족이나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미덕을 넘어서 도덕에 가깝다. 게다가 그 집단 내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면 매우 무력해지며 그 반작용으로 지극히 개인주의적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관계주의 성격이 더 강하다. 그 결과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 더 강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이 관계는 자기의 사회적 서열이나 소속 집단처럼 공식적이며 단편적이지 않고, 매우 다양하면서 가변적이다.
물론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일본식 집단주의의 단점은 조용히 잘 돌아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해 잘못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일거에 집단 전체가 이견 없이 향해가는 획일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반면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관계들에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충돌과 갈등이 빈번할 위험이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 이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 차이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MZ를 넘어 알파 세대까지 각기 다른 세대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에 걸쳐 거의 같은 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관계가 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전에는 없었던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로 옮겨가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자기소개서를 쓴다고 종종 외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자기 소개란에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계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저는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서…”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자기소개서의 시작이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여러 가지 관계적 위치나 역할에 대한 묘사가 계속된다. 이와 달리 외국인들의 자기소개서는 첫 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한다.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관계를 인정해야 소통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래서 한국인은 다른 세대와 소통할 때 자신의 관계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언제 가장 크게 느낄까? 물론 당사자끼리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다. 하지만 못지않은 세대 차를 느끼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고 평가절하거나 심지어는 훼손하려 할 때다. 수많은 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서 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 “도대체 네 친구들은 왜 다 그 모양이냐”라는 핀잔을 하는 순간부터다. 이런 경우 자녀는 극심한 모멸감과 동시에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관계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 분야 연구들을 보면 노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가장 큰 단절감이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홀로 사는 부모에게 “아버지 그런 할머니랑 왜 가깝게 지내세요?”라든가 “어머니 그런 할아버지와는 만나지 마세요” 이런 말을 들은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때 못지않은 섭섭함을 느낀다고 한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의 관계가 폄하될 때 자신에 대한 폄하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불편함을 느낄까? 한국인의 자아는 그 어떤 다른 문화에서보다도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대 소통과 화합은 상대방 세대의 관계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 관계를 인정하고 상사나 부하 직원이 상대방의 세대가 가지는 장점을 칭찬하면 한국인은 마치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선배 세대라면 한 번쯤 후배 세대에게 이런 칭찬을 해주시면 어떨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일을 잘한다던데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구먼?” 한 개인에게 하는 칭찬보다 훨씬 더 큰 소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후배 세대들도 마찬가지다. 선배의 관계를 존중할 의무는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런 덕담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선배님, 나이 드신 분답지 않게 옷을 잘 입으세요!” 관계주의에서는 상대방의 관계를 존중해야 소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