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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 2
안전 경영 도입기에서 성장기를 향해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는 비용을 최소화시키고 수익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켜야 한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근로자의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은 배제하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일부 보상해 주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춰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사고 발생으로 인한 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수익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안전이 기업의 비용과 수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글. 박종일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안전 경영은 기업 생존의 문제다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과 유사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1)이 시행된 2007년 이래 지금까지 기업이 처벌 받은 사례는 28건이며, 그중 57%의 기업이 파산·해산하였다. 파산한 기업 대부분은 지배 구조가 단순하여 과실에 대한 인과관계 파악이 용이한 중소기업으로 벌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한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제도 변화로 인한 안전사고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사고 발생이 기업의 이윤 추구에 미치는 영향 역시 커지고 있다. 패션브랜드 ‘H&M’은 패스트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2013년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사고는 이 흐름을 변화시켰다. H&M은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도상국에 저가 하청을 주었고, 공장식 건물의 무리한 증축으로 인한 붕괴 사고로 근로자 1,129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고 이후, 즉각적으로 다수의 관련 의류 기업들이 공정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H&M의 현재 주가는 고점 대비 40%에 그치고 있다.
‘윤리 경영’, ‘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같은 용어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이제는 이윤 추구 혹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안전’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재 안전 수준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현재의 상황이다.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건설업을 중심으로 보면, 2021년 사고 사망 만인율은 1.75‱2)다. 영국 ‘HSE(Health and Safety Executive)’에서는 위험성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가장 높은 단계는 ‘수용 불가능한 영역’으로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위험성을 가지며 비용과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수준이다. 중간 단계인 ‘허용 가능한 영역’은 일정 수준의 이익을 위해 위험성이 일부 허용되나, 합리적으로 실천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낮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가장 낮은 단계는 ‘널리 수용 가능한 영역’으로 위험성이 무시할 만한 수준이거나 적절히 대처되고 있는 영역이다.
국제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기준은 없지만 ‘수용 불가능한 영역’은 근로자의 경우 사망 만인율 10‱ 이상, 일반인의 경우 1‱ 이상을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인에 대한 위험성 잣대가 더 엄격하다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 관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널리 수용 가능한 영역’은 근로자와 일반인 모두 사망 만인율 0.01‱ 이하일 경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망 만인율 1.75‱는 중간 단계인 ‘허용 가능한 영역’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합리적으로 최대한 위험성을 낮춰야 하는 수준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의 경우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더 있다. 한 해 건설업에서 약 5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30대 건설사 전체에서 최근 5년간(2016~2020년) 발생한 사망자 수는 221명으로, 연간 44명에 해당되며 이는 건설업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가 기억하는 사고 관련 언론 보도를 떠올려보자. 아마도 대형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고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대기업이 더 많은 언론 보도, 즉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는 공공기관도 동일하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공공기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대신해 일을 하는 기관이다.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은 근로자가 사망한 것이 아닌 국민 중 한 명 이 국가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경우 ‘수용 불가능한 영역’의 기준으로 근로자에 해당되는 10‱을 적용받는 것이 아닌 일반인에 해당되는 1‱을 적용받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 비용 편익을 고려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위험성을 낮춰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2) 1년간 근로자 1만 명 중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안전 경영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해를 바로 대폭 줄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멕킨지의 리처드 N. 포스터는 1986년 그의 저서 <Innovation: The Attack-er’s Advantage>에서 발전의 형태는 노력에 대비해 S자 모양의 ‘S-curve’를 갖는다고 말했다. 도입기에서는 신제품이나 공정 개발에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노력 대비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다. 그리고 성장기에서는 노력 대비 일정 수준 비례하여 발전이 되다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투입되는 노력 대비 발전 정도가 낮아지며 한계에 수렴하게 된다. 현재 일부 대기업 및 공공기관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크게 나타나지 않는 도입기 단계에 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혁신을 위해 자본을 투입한다고 해서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특히 안전은 기술, 관리, 사회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영자의 인내가필요하다. 재해율이나 사고 건수가 중요한 수치이기는 하나, 이러한 후행 지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안전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둬야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과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안전경영을 위해서는 조직과 예산을 투입하여야 한다. 이후에는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경영 시스템을 평가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이에 대한 답이 바로 문제점과 개선안을 도출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➊ 현재 설정한 안전 목표가 중장기 안전보건 전략 및 목표에 부합하는가? 어렵지만 현실적인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보장하는가?
(많은 경우 단기와 중장기 계획의 연계성이 약하며, 비현실적이거나, 과정과 연계되지 않은 목표가 설정된다.)
➋ 안전 철학에 맞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가?
(직원들은 경영진이 사용하는 언어로부터 경영진의 의지를 추론하고 이를 수용하기 위해 구체적 실행 방안을 도출한다. 예를 들어,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이라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는데 이 경우 법의 준수보다는 책임 회피에 무게를 둔법 상 경영진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➌ 당신이 기관 내부 혹은 협력사로부터 받는 정보가 정직한 보고 문화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존재하는가?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는가?
(결과에 대한 문책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공표하여야 한다. 경영진이 알고 있는 상황과 실제 상황은 차이가 매우 큰 경우가 많다.)
➍ 사고 발생 시 ‘근본 원인’ 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사고 원인 조사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자체 조사 결과가 구체적이지 않다면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고가 어떻게, 왜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➎ 안전 관리 시스템이 목적에 적합하고 BP(Best Practice)인 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현재 수행 중인 안전관리 대책들이 적절한지 모니터링하고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수많은 대책들이 수립된 다음에는 사후 관리가 되지 않는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효과적이지 않은 대책은 과감히 폐지하여야 한다.)
➏ 안전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어떠한 프로세스를 사용하는가?
(이 프로세스가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세부 지표들이 적절하며 성과 측정이 객관적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해당 지표로 재해 건수와 같은 후행 지표만이 아닌 현 수준을 알 수 있는 선행 지표도 고려되어야 한다.)
➐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발생할 경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➑ 안전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성과 동기를 가진 적절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가?
(빈번한 보직 이동에 따른 안전 전문성 확보 방안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도·조언을 하는 직원이 전문성이 없으면 실질적인 현장 관리가 불가능하다.)
➒ 안전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실제 안전에 투입된 비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5번 항목에서 도출된 대책을 위해 사용된 예산으로 한정할 수 있다.)
➓ 기관의 성과는 다른 유사 기관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타 기관과의 정보 공유가 매우 필요하다. 안전을 특정 기관의 노하우라고 생각하는 순간 발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안전은 제로섬이 아니다
2021년 ESG 전문가인 앤드류 윈스턴과 유니레버의 전 CEO 폴 폴먼이 공저한 <Net Posi-tive: How Courageous Companies Thrive by Giving More Than They Take>에서는 ‘자신의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상품·운영·지역 및 국가 등 모든 범위에서 직원, 공급 업체, 지역사회, 고객, 심지어는 미래 세대 및 지구라는 행성 자체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개선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 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안전 확보는 제로섬 전략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전략에 해당된다.
우리의 안전 경영은 성장기로 가는 길목에 있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늦추지 않는다면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시점이 곧 올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