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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인사이트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글. 김경일(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만 가지 형태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믿을 만한 사람’과 ‘믿음을 주기 힘든 사람’을 가르는 것만큼 명확한 관계의 정리도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어 중에서도 ‘신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두 번째 기회를 위한 신뢰 형성

절친한 사이인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뢰가 왜 중요하냐면,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용서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배이지만 선배에게도 좀처럼 받기 어려운 귀한 조언이었다. 우리가 평소에 신뢰를 쌓아두지 않으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한두 번은 저지르게 되는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고 그렇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다음 기회가 없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기대를 저버린 사람을 다시 한 번 믿어야 할 때처럼 고민되는 순간도 없다.
그렇다면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상식적인 대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약속을 잘 지켜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적인 대답에 더해 의외의 한 가지가 더 있다. 이것을 가장 절묘하게 보여주는 연구를 소개한다.

본질적 관점과 점진적 관점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행동과학자 모리스 슈바이처(Mau-rice E. Schweitzer) 교수 연구진은 연구 참가자들에게 A와 B 둘 중 하나의 에세이를 읽도록 했다. 에세이 A의 내용은 사람들은 대부분 타고 난 것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것이 핵심이다. 에세이 B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노력하고 어떤 환경 속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중심이다.
심리학자들은 에세이 A와 B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각각 본질적(Entity) 관점(Mindset), 점진적(Incremental) 관점이라고 지칭한다. 즉 A는 어떤 사람의 성공이든 실패든 모든 결과의 원인을 성격이나 지능 등 그 사람의 고유한 기질에 두는 생각을 의미한다. 반면에 B는 같은 결과의 원인을 그 사람의 후천적 노력이나 전략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두 에세이 중 하나를 읽은 참가자들은 이후 일종의 ‘신뢰 게임’을 진행했다. 게임 파트너는 다른 참가자가 아닌 컴퓨터였다. “안녕하세요” 정도의 짧은 메시지를 보내온 파트너를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의심하지 않고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규칙은 다음과 같다. 참가자들에게 6달러의 돈을 지급하고 전액을 파트너에게 넘겨 투자하면 3배의 수익을 얻게 된다. 그렇게 얻은 18달러를 두고 파트너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실행한다. 첫 번째는 절반인 9달러를 돌려주어 공평하게 분배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본인이 전부 차지하는 것이다.
처음 진행한 게임에서는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파트너에게 돈을 투자했다. (물론 첫 번째 게임에서부터 에세이 A를 읽은 참가자 중 79%, B를 읽은 참가자 중 89%가 파트너에게 투자한 것으로 나타나 미세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런데 총 세 번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파트너는 18달러의 수익을 매번 본인이 독식했다. 그러니 참가자의 입장에서는 파트너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마지막 게임에 이르자 또 한 번 파트너에게 돈을 맡기는 참가자가 10%에도 미치지 못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이후 참가자들은 이 욕심쟁이 파트너로부터 사과와 함께 앞으로의 게임에서는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겠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실제로 이 약속은 모두 지켜졌다. 일종의 신뢰회복 과정인 셈이다. 맨 마지막 게임에 다다랐을 때에는 자신의 돈을 파트너에게 맡기는 참가자의 비율이 70% 정도까지 회복됐다. 10%까지 떨어진 신뢰가 50%, 60%, 70%로 점진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연구진은 마지막 단계로 게임이 단 한 번 더 남았다고 공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파트너로부터 어떤 메시지도 전해지지 않았다. 마지막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파트너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보였을까?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에세이를 읽은 참가자들은 53%가 다시 파트너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세이를 읽은 참가자는 38%만이 파트너와 거래했다.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매우 중요한 점이 바로 여기 있다. 우리가 신뢰를 얻기 위해 평소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위의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는 본질의 관점과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진적 관점 중 본인은 평소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입장인지 생각해 보자. 물론 근본적으로 변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와 조직 내에서 소통은 더욱 많아져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은 후자의 점진적 관점이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다시 신뢰를 회복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라도 상대방에게 보여줘야 한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확실한 행동 말이다. 우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