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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 1
집, 자립준비청년의 꿈이 시작되는 곳
부모의 학대나 방임, 이혼 등의 이유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이 있다. 이들은 ‘보호아동’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이나 그룹홈, 가정위탁 등에서 보호받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자립을 시작하는 보호아동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 한다.
글. 신선(아름다운재단 자립준비청년 지원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
자립준비청년에게 ‘집’이란
시설 등의 보호가 종료되어 세상에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은 매해 약 2,500명이다. 이들은 아이와 어른 그 중간 어디쯤에서 고군분투하며 오늘도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나 또한, 15년간 보육원에서의 생활을 끝내고자립을 시작한 자립준비청년이다. 현재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을 진행하며 만나온 당사자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경제, 주거, 심리 문제 등 다양했는데 그중 주거 문제야말로 자립준비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닐까 싶다.
자립준비청년이 자립 후 얻게 되는 집은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보호를 받는 동안 ‘집’이라 함은 시설 혹은 위탁가정이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단체생활로 인해 개인적인 공간을 누릴 수도 없다. 한 방에서 2~3명이 같이 생활하고, 책상과 옷장을 공유해야 한다. 여느 10대들처럼 좋아하는 가수의 포스터로 내 방을 꾸미는 등 취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당사자들에게 집이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 자신을 마주하며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다. 더 이상 누군가와 공간을 나누지 않아도 되니 내가 좋아하는 대로 꾸며보고, 친구들을 초대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자립 후 얻게 되는 집은 큰 의미가 있다.
주거지 마련의 유일한 희망, LH 주거지원 제도
자립을 시작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이 주거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당사자들은 부동산 거래를 해본 경험이 없다.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모르고, 처음 듣는 용어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혹시나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자립 지원금을 받지만, 자립 후 지속적으로 필요한 생활비·학비·비상금 등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부족한 금액이다. 집을 구할 때 부모님이 보증금을 지원해준다거나 부동산에 동행해 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
LH의 주거지원 제도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큰 의지가 되는 이유이다. 기존 시세 보다 훨씬 저렴한 주거비에, 자립준비청년이라면 1순위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최장 20~30년까지 거주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한 자립의 상황 속에서도 LH 거주 기간을 기준으로 조금씩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매년 자립을 시작하는 자립준비청년이 2,500여 명인데 LH는 지난해 이의 60%에 해당하는 1,520호를 공급했다. 이렇듯 자립준비청년들에게 LH 주거지원 제도가 갖는 의미는 정말로 크다.
그럼에도 제도 이용이 어려운 이유
하지만 이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자립준비청년이 LH의 주거지원 제도를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복잡한 절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LH 전세임대의 경우 서류 심사 1개월, 매물 탐색 및 권리 분석 2~3주, 계약및 잔금 처리까지 2주 정도로 약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임대 유형에 따라 신청 창구가 다른 것도 문제가 된다. 내가 만나본 한 자립준비청년은 “LH도 전세임대, 매입임대, 행복주택 등 종류가 많고 복잡하다. 어디서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소년소녀가장 전세임대는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신청하지만, 청년전세임대는 지사를 방문하거나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한다. 또한 건설임대의 경우 아동권리보장원의 추천을 통해서만 받고 있다. LH 주거지원 제도 중 자신한테 맞는 제도가 무엇인지 비교하고, 신청을 해야 하는데 혼자 집을 구해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당사자들은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LH의 지원을 받으면 저렴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더 비싼 금액에 월세 계약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은 5년간 사후 관리를 받는다. 이때 아동의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자를 자립전담요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립전담요원 1인당 대상 아동은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200명에 달한다. 담당해야 하는 아동 수가 너무 많아,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자립전담요원 또한 LH의 주거지원 제도에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있어 조건이 맞더라도 입주까지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벌어진다. 자립 후 혼자 주거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 주거 문제와 관련된 보다 실제적인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지난해 7월 정부에서는 48개의 세부 과제가 담긴 자립준비청년 정책 개선안을 발표했다. 주거 지원 뿐 아니라, 경제, 심리, 취업 등으로 폭넓은 지원이 예고됐다.
이를 보고 누군가는 ‘이 정도 지원이면 됐지’하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자립 지원이 늘어나고, LH의 임대주택 유형이 다양해지면 자립준비청년의 삶이 나아질까? 단순히 지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자립준비청년이 겪는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LH 임대 유형이 다양해지면서 오히려 혼란을 겪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지원이 늘어나는 만큼, 자립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하다. 당사자들이 어려워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LH에서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거비에 부담을 느끼는 당사자들을 위해 전세임대 이자를 감면하는 제도를 만들고, 홀로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 의지할 어른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자립준비청년만을 위한 전문 콜센터를 설치했다. 또한 취업의 어려움에도 공감해 자립준비청년이 LH 체험형 인턴에 지원할 경우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
매년 자립준비청년이 2,500명씩 사회에 나오지만 우리나라 전체인구와 비교해봤을 때 당사자들이 내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다. 하지만 우리의 고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계속 듣고, 실질적인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해 온 LH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홀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자립준비청년에게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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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중인 신선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