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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거절하는 법
- 글. 김경일(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우리 인생에서 ‘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거절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나아가 관계를 망치지 않고 지혜롭게 거절하는 법에 대해 살펴본다.

이토록 어려운 거절
“거절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이다. 그리고 이 질문만큼 답변하기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거절은 사전적으로 ‘상대편의 요구, 제안, 선물,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침’을 의미한다. 정의 자체만 봐도 벌써 쉽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왜 거절은 어려운 걸까? 거절이 어려운 까닭은 사실 대부분 내가 거절당했을 때 마음이 아픈 정도에 비례한다. 내가 어렵사리 꺼낸 부탁을 상대방이 거절했을 때 속상했고, 심지어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절을 힘들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역지사지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거절 이후 관계가 나빠질 거라는 염려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도 쉽게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세 번째 이유는 나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당연히 간단하지 않다.
거절의 네 가지 법칙
심리학자들이 이런 표현을 자주 한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하나씩 구체적이고 순서에 맞게 해결해 나가라고 말이다. 그래야 어떻게든 거절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거절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첫째, 거절 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쁜 결과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임하기 일쑤다.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에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고려할 수조차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떠올리고 있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금전적 요구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잘 모를 때 거절이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제안이나 부탁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거절과 관련해서 미래에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사람들은 이유를 들어야 납득하는 경향이 강하다. 거절도 예외가 아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엘렌 랭거 연구팀이 도서관에서 복사를 하기 위해 먼저 줄 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낯선 사람이 접근해 각기 다른 말을 하도록 한 것이다. “실례합니다. 제가 다섯 장만 복사하려고 하는데, 먼저 복사해도 될까요?” 이 경우 60%의 사람이 복사기를 양보했다. 그런데, “복사기를 먼저 써도 될까요? 왜냐하면 급한 일이 생겨서요.”라고 ‘왜냐하면’을 덧붙이자, 무려 94%가 오케이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심지어 그 이유가 허술해도 ‘왜냐하면’ 효과는 통했다. “제가 복사기를 먼저 써도 될까요? 왜냐하면 제가 복사를 해야 하니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댄 경우에도 무려 93%가 요청에 응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나오면 자동으로 그 뒤에 어떤 이유가 따라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으로 ‘Yes’라는 말이 나와 버린다. 따라서 거절에도 이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말투는 친절하게 내용은 단호하게’를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거북한 내용의 말은 거북한 말투로, 확실한 내용의 문장은 확실한 말투로 하곤 한다. 그런데 불확실한 내용을 자신감 있는 말투로 이야기하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보통 거절하는 말일수록 어려운 말투나 기어들어가는 어조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거절할 때 친근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자. 상대방과 거절하는 나 자신 모두 내용의 단호함은 느끼지만 분위기 상의 불편함은 상대적으로 덜 느낄 수 있다. 거절의 단호함은 내용이어야지 말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거절의 이유는 거절하는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거절의 이유로 ‘거짓말하기 싫다.’보다는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다.’라는 말이 더 좋다. 또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기 싫다.’보다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 싫다.’라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왜일까? 전자의 표현보다는 후자의 표현이 더욱 거절하는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안이나 부탁을 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게 되면 (거절하는) 상대방의 정체성까지도 훼손하거나 침범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절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거절할 때 왜 이런 것들까지도 고려해야 할까? 거절은 어렵고 자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A급 선수와 평범한 선수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일상적인 플레이에서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어려운 타구를 처리하거나 동작을 취할 때 기량 차이가 확연하다. 그리고 이런 타구나 동작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A급 선수들은 이런 경우에도 대비해서 평소에 ‘연습’을 해 둔다. 그래서 실전에서도 그 기술의 사용이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거절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에 이 네 가지를 염두에 두고 연습을 해둬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