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노트
도망치듯
오른 산에서 발견한
건강한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
김강은 클린하이커스 대표
글. 사진. 김강은 클린하이커스 대표
쓰레기를 줍기 위해 전국의 산과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클린하이커스’ 멤버들이다. 클린하이킹을 시작으로 친환경 아웃도어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룹 클린하이커스의 리더 김강은. 3,500명의 사람들과 함께 3톤 이상의 쓰레기를 주우며 100점의 정크아트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림쟁이었던 그가 산에 푹 빠지게 된 것도, 산에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것도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에서부터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산을 통해 화가의 꿈을, 녹색활동가라는 직업을, 그리고 삶의 지속가능성을 얻었다고 말한다. 산에 어떤 숨은 힘이 있기에, 그는 친환경 산덕후가 되었을까.

뒤늦은 마음 방황기
“여자 엄홍길이라도 되려는 거야?” 한참 산에 다닐 때 친구들에게 들었던 놀림 말이다. 그런 놀림을 받을 만도 한 것이 나는 등산, 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평범한 미대생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만화책을 사 모으고, 초등학생 땐 A4용지를 여러 개 겹쳐 직접 만화책을 만들어 반 친구들에게 연재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던 나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멋진 화가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토록 원하던 ‘홍대 미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 그림으로 당장 밥 한 끼를 벌어 먹고사는 방법조차 막막했던 것이다. 내 인생의 ‘슈퍼 패스’일 거라 굳게 믿었던 ‘홍대’라는 타이틀은 허울좋은 포장재였나! 여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세상에 배신당했다고 여긴 23살의 어린 마음에 뒤늦은 방황기가 찾아왔다. 노선을 바꾸어 취업을 해야 하나,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 뛰어가며 작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자존감은 바닥을 향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향한 곳은 동네 앞산 수락산이었다.
산이랑 연애하는 여자
왜 하필 산이었냐고 묻는다면 첫째, 떠나고 싶던 해외여행을 갈 정도로 벌어 놓은 돈이 없었다. 둘째,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은밀한(?) 거래에 못 이겨 가끔 끌려갔던 곳이기에 무의식중 친근함으로 산으로 향했던 것이 아닐까. 셋째, 어디라도 좋았다. 이 지긋지긋한 독서실만 아니라면!
“허억, 허억! 이러다 죽는 거 아냐?” 평소에 하지 않던 등산을 하려니 금세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그래도 이왕 온 것 끝까지 가보자며 오르고 쉬고를 1시간 남짓 반복했을까. 고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딘 순간 느꼈던 감정은 충격에 가까웠다. 내 두 발끝 아찔한 바위 너머로 펼쳐진 풍경! 그 풍경 속에는 내가 살던 세상이 아주 작게 보였다. 책상 앞에 앉아 치열하게 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작고 사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 땀을 순식간에 날리듯 불어오는 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만끽했다.그날 이후 산에 푹 빠졌다. 당시 프리랜서 벽화가로 일하며 일주일에 세 번이든 다섯 번이든 남는 시간엔 무조건 산에 올랐다. 여자 엄홍길이란 이야기도, 남자는 안 만나고 산이랑 연애하냐고놀림받아도 좋았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산보다 흥미롭고 무궁무진한 대상은 없었으니까! 처음 산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은 기본이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즐거웠다. 또 우리나라는 대 ‘산’민국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지역마다 다양한 산들이 있어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재미도 풍부했다. 같은 산이라도 계절마다, 코스마다, 동행에 따라 매번 새로웠고, 땀을 흘려 고도를 높이며 얻는 도파민은 그 어떤 유흥보다 짜릿했다. 동네 앞산부터 시작한 산행은 국립공원 도장 깨기로 발전하며 등산은 내게 스포츠가 아닌 ‘사람으로의 여행, 자연으로의 여행’이 되었다.

내 꿈을 이뤄준 산
수년간 산을 다니다 보니 내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림’에 대한 욕구였다. 누군가가 의뢰해서 그공간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는 벽화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 주진 못했다. 계절별로 다양한 색을 피워내는 나무, 오묘한 바위의 색감과 질감,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난 하늘 아래 구름모양 무늬 옷을 입은 산등성이, 빛에 따라 입체감을 더하는 초록 숲. 매번 산에서 마주하는 이런 풍경들이 붓질하고 싶은 욕구를 더욱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산’이란 공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볼까?
붓과 팔레트, 드로잉북을 배낭에 챙겨 넣고 집 앞 산인 도봉산을 올랐다. 정상부 선인봉이 바라다보이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그렸다. 평소라면 그저 쉬이 지나쳤던 풍경들을 하나씩 하나씩 오래오래 눈과 화폭에 옮겨 담았다. 그날의 산행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꼭 정상에 가지 않아도 산행은 즐거울 수 있다는 것, 쉼을 가지고 머물면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는 것. 산은 나의 화실이 되었고, 나는 어디든 걸어서 내 두 눈에 비친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다.

산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새로운 별명은 클린하이커
우리나라의 명산을 여행하다가 무대를 해외로 넓혔다. ‘나를 찾는 길’로 알려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유럽의 알프스의 대표 ‘뚜르 드 몽블랑(Tour du Mont Blanc)’을 여행했다. 만년설이 새하얗게 빛나는 히말라야를 오르고, 동남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을 등반하며 우리나라 산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세계의 산을 누볐다. 새로운 산을 모험하는 것은 나의 행복이었고, 두발로 걸어 마주한 풍경을 화폭에 담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가치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던 나날들 속에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결코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몽블랑 트레킹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지리산 일출 산행을 갔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귀한 지리산 일출을 보고 기분 좋게 대피소 취사장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깨진 술병과 음식물이 엎어진 냄비, 일회용 쓰레기들이 널브러진 풍경이었다. 지리산에 왔을 정도면 어디서도 산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일 텐데. 알 수 없는 화와 부끄러움, 복합적인 감정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날 쓰레기를 주우며 내려왔다.
며칠이 지나도 불쾌한 감정이 가시질 않았고, 분을 토해내듯 이 일화를 SNS 게시글에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같은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 “함께 만나 등산도 하고, 쓰레기도 주워볼까요?”라고 운을 뗐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6명의 사람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기점으로 한 달에 한 번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클린하이킹’ 캠페인을 진행하다가 이제는 6년간 누적 참여자 3,500명 이상, 누적 쓰레기 수거량 3.5톤 이상을 실행해오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그룹의 대표자가 되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산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산을 좋아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산이 좋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를 순수하게 웃음 짓게 해준, 오랫동안 놓았던 붓을 다시 들게 해준, 멋진 클린하이커들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산을 그저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만큼, 좋아하는 만큼 지켜주고 싶어진 마음이랄까! 산에 갔을 때 쓰레기 한 봉지 주워오기, 일회용 페트병 보다 개인 물병 사용하기, 흔적 남기지 않는 문화 전파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통해 산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산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러한 마음이 모이면 조금 더 아름다운 산이, 훨씬 더 나은 지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