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눈은 황홀 마음은 촉촉
오감 사로잡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글. 사진. 채지형(여행작가)

전라남도 순천시에는 특별한 정원이 있다. 바로 제1호 국가정원이다. 그곳에서 올해 10월 31일까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도 열린다. 2013년에 이어 10년 만에 두 번째로 열리는 박람회다. 강산이 변하는 10년 사이, 순천만국가정원도 많이 바뀌었다. 다양해지고 풍성해졌다. 규모도 193㏊(약 58만 평)으로, 10년 전 대비 2배 가까이 넓어졌다. 100만 그루 나무가 초록을 뿜어내고 3,500만 송이 꽃이 화려함을 뽐낸다. 여기에 순천만국가정원과 도심을 연결, ‘인간과 자연’이 더 가까워졌다.

10월 31일까지 ‘정원에 삽니다’ 주제로 열려

순천은 한자로 순응할 ‘순(順)’, 하늘 ‘천(天)’을 쓴다. 하늘의 뜻에 순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순천시는 이름처럼 순한 도시다. 드넓은 땅과 산, 들이 펼쳐져, 어디를 보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즘은 순천을 생각하면 ‘정원’이 떠오르지만,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국가정원은 정원 조성이 1차 목적이 아니라, 순천만 훼손을 막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순천만 습지 복원을 위해 시민들이 앞장서고, 흑두루미 생태계 보전을 위해 관에서 전봇대를 뽑은 순천이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박람회는 4월부터 10월까지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에 걸쳐 열린다. 계절별로 다른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풍광을 기대할 수 있다. 여름에는 장미와 나팔꽃이 핀다면, 가을에는 국화와 코스모스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눈길을 끄는 건 ‘정원에 삽니다’라는 박람회 주제다. 아름다움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석구석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쉴 수 있는 의자가 무척 많아졌다. 바람이 솔솔 부는 언덕에는 낮잠을 잘 수 있는 평상도 준비해놓았다. 통나무 의자, 안락의자 등 종류도 다양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지구를 느낄 수 있는 어싱(earthing) 길도 마련됐다.
박람회장 안에서 정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가든스테이도 생겼다. 이름도 앙증맞은 ‘쉴랑게’다. 그림 같은 풍광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순천의 로컬푸드로 차린 아침까지 맛본다.

메디치가의 정원을 재현한 이탈리아정원

  •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
    인도 철학자 타고르의 명언이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은 나에게 무한히 많은 것들을 준다”
    라며 정원의 모든 것이 친구라고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원은 여러 작가에게
    영감을 안겨줬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전라남도 순천시를
    선택한 이유 역시 ‘정원’ 때문이다.
도시와 정원을,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정원

정원을 돌아보며 깜짝 놀랐던 곳은 ‘그린아일랜드’였다. 순천만국가정원 부근 아스팔트 길 1.03㎞가 드넓은 잔디로 바뀌었다. 10년 전 차로 달리던 길을 두 발로, 그것도 잔디 위를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도로표지판과 신호등은 그대로 남아있어, 과거 도로였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그린아일랜드는 국가정원과 도심을 이어준다. 그린아일랜드 끝에서 동천변을 따라 걸으면 순천 도심이 나타난다.
정원에서 도심까지 연결되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전기배다. 국가정원 안 호수정원에서 도심과 가까운 동천테라스까지 2.5㎞ 구간을 ‘정원드림호’가 오간다. 새로운 재미다. 배를 타고 정원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시와 정원이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정원

    시크릿가든으로 들어가는 길

  • 강렬한 원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멕시코정원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정원 따라 세계 일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사진을 찍는 정원이 국가정원이다. 찬란한 원색의 벽과 야자나무, 달리아로 꾸며진 멕시코정원, 알람브라궁전의 수로와 구엘공원의 타일벤치를 재현한 스페인정원, 메디치가의 빌라 정원을 옮겨놓은 듯한 이탈리아정원,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정원 등 각양각색의 국가정원이 꾸며져 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국가정원을 돌아보고 나니, 마치 미니 세계 일주를 한 기분이 들었다.
LH공공정원, 서울정원, 부산정원 등 상징성 있는 ‘참여정원’ 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정원은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를 홍보하기 위해, 부산엑스포 마스코트 ‘부기’가 파라솔을 들고 관람객을 반겼다. 서울정원은 서울의 대표 10색을 통해 서울을 표현했으며, 서울디자인정원은 DDP를 형상화한 정원을 선보였다.

정원의 미래, 신기술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시크릿가든

이번 박람회에서 새로움을 크게 느낄 만한 공간이 국가정원식물원과 시크릿가든이다. 국가정원식물원에는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희귀식물과 꽃을 볼 수 있는데, 배경 테마를 순천의 자연인 해룡산과 봉화산, 인제산, 동천, 이사천으로 꾸몄다. 또 실내에 15m 수직폭포를 설치, 시원함을 안겨줬다.
식물원을 보고 난 후 바로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스카이워크를 통해 시크릿가든까지 둘러봐야 한다. 시크릿가든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지나치기 십상이다. 시크릿가든은 태양광과 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지하정원으로, 상상 이상의 재미가 숨어 있다. 미디어아트를 이용한 흥미로운 체험공간이 있으며, 새하얀 설원 속에서 한대식물이 자라는 빙하정원도 있다. 영하 17도의 빙하정원은 더위에 지친 관람객들에게 짜릿함을 안겨줬다.

더없이 낭만적인 한여름밤의 정원

시간이 허락한다면, 어둠 깔린 순천만국가정원도 감상해 보자.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들어와 더없이 낭만적인 분위기가 펼쳐진다. 특히 순천만국가정원의 랜드마크인 호수정원은 몽환적으로 변한다. 뜨겁게 달구어진 열기가 가라앉은 밤, 고즈넉하게 국가정원을 거닐어 보는 것도 추억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팁이 있다. 매일 오전 10시, 2시, 4시 하루에 3차례 무료 해설을 진행한다. 동문으로 들어가면 팻말이 보인다. 1시간 정도 소요되며, 해설을 듣고 돌아보면 정원을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다. 전남 이외 지역 거주자라면, 전남사랑도민증을 발급해 가자. 입장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 ‘개발이냐 보존이냐’
    정원으로 표현한 LH공공정원

    여러 참여정원 중에서도 LH공공정원은 손꼽을만한 작품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정원이다. 입구에서부터 순천만국가정원의 출발이자, 현대사회가 품고 있는 고민 중 하나인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고민하게 만든다. 거침없이 잘린 나무 주변에는 황폐한 자연이 있다. 그 공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생명력 가득한 털수염풀이 바람에 흩날린다.
    수많은 고민의 결과 만들어진 순천만국가정원. LH공공정원에서는 개발에 의해 훼손되는 자연을 드러내고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순천만을 보여줌으로써 공존에 대해 한 번 더 느끼게 한다. 보존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생태계의 보고인 오늘날의 순천만이 남아있었을까 아찔하다.
    대형 화면에서는 5.2km 떨어져 있는 순천만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화면 앞에 서면, 화면 속 순천만에서 꽃이 자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생명력 가득한 영상이 등장한다. 순천만의 가을을 수놓는 칠면초가 하늘거리고, 한없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바닥도 눈여겨봐야 한다. 자세히 보면, 한 면을 비스듬히 깎아 놓은 형태다. 음각과 양각을 통해 한쪽에는 물이 가득해 반짝이는 모습을, 반대쪽에는 보면 물이 빠진 갯벌을 표현했다. 또 여러 방향에서 드나들 수 있도록 뚫려 있는데 이것은 소통을 의미한다.

순천 가볼 만한 곳
    • 낙안읍성 민속마을

      엄마 품처럼 포근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필수 여행지다. 낙안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김빈길 장군이 1397년 토성으로 축조했으며, 1424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안에는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초가 사이로 난 돌담길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즐겁고 편안하다(樂安)’는 마을 이름처럼 초가 사이를 걷는 것으로도 위안이 된다.

    • 선암사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으로, 대웅전과 삼층석탑, 원통전 등 유적이 빼곡하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은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하다. 무지개 모양 승선교도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선암사 입구의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 들러보자. 한옥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이 향기로운 여행을 선물한다.

    • 아랫장 야시장

      금·토요일 아랫장 야시장이 열린다. 대학생과 청년 사업가, 지역 소상인이 참여해 아이디어 넘치는 요리를 낸다. 짱뚱어 모양으로 만든 짱뚱어빵, 칠게튀김 등 재미있는 먹거리가 순천 여행을 풍성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