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붙잡고 싶은 계절,
머물고 싶은 그곳
산소카페 청송
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가을은 색(色)이다. 푸릇푸릇하던 풍경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울긋불긋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도시 빌딩 숲의 작은 변화에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이럴 땐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산의 아름다움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오가는 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청송으로 떠난다.

청송을 가리켜 ‘산소카페’라 부른다. 군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지역이며 굴뚝에 연기 나는 공장이 한 곳도 없는 청정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 공기 맑고 산 좋고 물 좋은 건 당연지사다. 청송은 서산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서울에서 넉넉히 4시간이면 도착한다. 그 덕택에 요즘 청송을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이 도시의 것과 사뭇 다르다. 시골 고유의 매력이 물씬하다. 도로변에 잠시 차를 멈추고 쉬어가고픈 마음이 생길 정도다.
기암에 압도되고 단풍에 감탄하고, 주왕산국립공원
주왕산(720.6m)은 시선을 사로잡는 기암괴석과 수려한 계곡을 품은 명산이다. 예부터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혔으며, 1976년 우리나라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특히 가을 단풍을 꼽자면 주왕산만 한 곳이 없다. 국립공원의 조사에 따르면 주왕산은 단풍철 등산객들이 내장산, 북한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찾는 산이라고 한다. 주왕산이 단풍으로 유명한 이유는 산에 활엽수가 많기 때문인데, 특히 주왕산 단풍은 잎이 9~11개로 갈라지는 당단풍이다. 당단풍은 일반 단풍나무보다 조금 더 크고, 가장자리에 겹톱니가 있어 더 화려하게 보인다. 더불어서 웅장한 기암괴석이 단풍의 배경 노릇을 톡톡히 해 멋을 더한다. 주왕산을 석병산(石屛山)이라 부르는 이유다.
주왕산 이름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의 주왕이 당나라 군사에 쫓겨 이 산에 숨어들었다는 설과 신라 태종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자 이 산에 숨었다가 사후에 주원왕으로 불려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기암괴석과 협곡이 특히 발달한 주왕산은 화산 분출과 풍화 침식작용이 만든 시간의 걸작품이다. 실제로 주왕산의 지형은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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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추폭포 협곡 구간은 주왕산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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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진 절구폭포
위) 용추폭포 협곡 구간은 주왕산의 하이라이트다.
아래)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진 절구폭포
주왕산 탐방은 주봉코스(8㎞), 주방계곡코스(4.3㎞), 가메봉코스(5.9㎞), 절골코스(13.5㎞) 등 7개 코스로 나뉜다. 이 가운데 주방계곡코스는 단풍을 탐미하기에 으뜸이다. 탐방로 초입에 있는 대전사를 나서면 기괴한 수석 전시장을 보는 듯하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앞으로 기울어진 급수대가 대표적이다. 당나라 주왕에 얽힌 명소도 여럿 있다. 주왕이 쌓았다는 주왕산성, 주왕이 숨어 살다 죽었다는 주왕굴, 주왕이 무기를 감췄다는 무장굴과 연화굴 등이 있다.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폭포를 감상하는 것도 주왕산 탐방의 매력이다. 대전사에서 1시간 못 미쳐 도착하는 용추폭포가 주왕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암벽 사이로 난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 신선이 구름을 타고 유유자적할 것 같은 협곡이펼쳐진다.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절구폭포, 용연폭포까지 감상하고 다시 대전사로 향한다. 무엇보다 주방계곡코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2.2㎞ 구간은 무장애 탐방로이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지 코스라 어렵지 않다. 보호자가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어주면 누구나 안전하게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용추폭포까지만 다녀온다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주왕산을 상징하는 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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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소대 주변은 주왕산에서 단풍이 가장 고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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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전망대에 사진가들이 가득하다. ⓒ한국관광공사
주왕산의 최고봉인 주봉에 오르는 주봉코스는 다양한 명소와 울창한 산림을 즐기기 좋다. 대전사를 출발해 주봉, 칼등고개, 후리매기골, 절구폭포, 용연폭포, 용추폭포를 거쳐 대전사로 되돌아온다. 이 구간에서 칼등고개와 후리매기골 구간은 길이 험준하고 경사가 심해 조심해야 한다.
주산지(명승)는 주왕산국립공원 품에 안긴 농업용 저수지이다. 조선 경종(1721) 대에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한낮에 별생각 없이 찾으면 그저 평범한 저수지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나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근 왕버드나무와 추색 가득한 주변 풍경이 어우러져 잊지 못할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이 환상적인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가들로 전망대는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다.
풍경 맛집 청송 8경 중 제1경, 신성계곡
청송에는 주왕산국립공원에 버금가는 단풍 명소가 있다. 청송군이 선정한 청송 8경 가운데 1경이다. 주왕산이 1경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청송 제1경은 신성계곡이다. 계곡은 신성리 방호정에서 시작해 고와리 백석탄에 이르는 약 10㎞를 흘러간다. 신성계곡은 감입곡류천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감입곡류천은 주로 산악지대나 고원지대 또는 구릉지에서 보통의 하천보다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흐르는 곡류천이다. 대표 지역으로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지형을 꼽을 수 있다.
신성계곡을 따라 걷는 녹색길은 한국관광공사의 걷기 좋은 길로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명소 4곳을 품고 있다. 신성계곡 녹색길은 3구간으로 나뉜다. 1구간 방호정 효길(4.2㎞)은 신성교에서 헌실 쉼터까지이다. 이 구간의 백미는 감입곡류천에 지은 방호정과 신성리공룡발자국, 한반도지형 등이다. 그중 한반도지형은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지형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2구간 ‘자암 적벽길(2.9㎞)’ 은 헌실 쉼터에서 반딧불농장까지이다. 중간 지점에 있는 만안자암 단애는 붉은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다. 마지막 3구간 ‘백석탄 길(4.7㎞)’의 백석탄 포트홀은 암릉을 축소해 놓은 듯 신비롭기 그지없다. 하얀 바위 사이로 흐르는 청아한 계곡 물소리와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된다. 깊어가는 가을, 청송에 더 머물고 싶다.

감입곡류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호정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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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한반도지형과 쌍둥이 같은 신성리 한반도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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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을 가리켜 ‘산소카페’라 부른다.
군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지역이며
굴뚝에 연기 나는 공장이 한 곳도 없는
청정지역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 공기 맑고 산 좋고 물 좋은 건
당연지사다.
아흔아홉 칸 고택에서 하룻밤
청송의 시간은 시곗바늘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흐른다. 느리고 더딘 것 같지만, 오히려 느림의 미학을 좇아 청송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발걸음은 국제슬로시티 ‘덕천마을’ 로 향한다. 이 마을 중앙에 자리한 송소고택은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지은 아흔아홉 칸 저택이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ㄱ’ 자 모양의 내외담 기능을 하는 헛담을 마주한다. 그 뒤로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가 있다. 큰 사랑채의 지붕이 하늘을 날아오를 듯 가뿐하다. 큰 사랑채 협문을 나서면 별당이다. ‘ㄱ’ 자 누마루가 멋스럽다. 한옥 숙박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한옥 숙박체험은 상상했던 것보다 신선하고 감동적이다. 특히 땅거미가 깔리면 낮과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달그림자와 시시때때로 자리를 이동하는 별빛, 그리고 풀벌레들이 한밤의 음악회를 연다.
화려한 단풍으로 시작한 여행이 고택에서 마무리 된다. 이보다 더 운치 있고 한유한 가을 여행이 또 있을까.

송소고택
청송 핫플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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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문학관
폐교된 진보제일고등학교 건물을 증·개축한 곳으로 소설가 김주영의 역작 《객주》를 만날 수 있다. 드라마로도 여러 번 제작된 객주는 19세기 말 조선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으로 한국 역사 소설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주영의 육필원고와 초판본에서 최신 본까지의 다양한 판본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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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립청송야송미술관
군립청송야송미술관과 청량대운도전시관은 청송 출신 동양화가 야송 이원좌 화백 본인의 작품과 소장품을 전시한 미술관이다. 46m×6.7m에 이르는 대작 ‘청량대운도’는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작품 제작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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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전시체험관
청송지역의 대표적인 고택을 재현한 한옥숙박시설과 옛편지전시관, 청송백자전시관, 청송수석꽃돌박물관, 청송심수관도예전시관 등 한자리에서 관람은 물론 체험까지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약 4km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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