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칼럼

기업이
혁신을 이루는
첫걸음은
‘신뢰’입니다

글. 최장호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우리는 어려서부터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이솝우화에서의 양치기 소년 사례로부터 신뢰가 깨졌을 때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학습했다. 고대 그리스의 창작 우화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신뢰가 소중한 자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신뢰(trust)’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인 ‘Trost’(트로스트)에서 기인한다. 누군가를 믿게 되는 상황에서는 관계 속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경제학에서는 당사자 간 거래를 진행하는데 수반되는 비용(cost)을 설명하는 ‘거래비용이론(transaction cost theory)’이 있다. 이 이론에서는 계약 당사자 간 정보의 비대칭, 기회주의, 불확실성 등의 요인으로 인해 거래 수행에 따른 비용, 즉 ‘거래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즉 인간의 이기심, 서로에 대한 불신, 가지고 있는 정보량의 차이 등에 의해 거래 전에 잠재적 거래 대상자를 파악하는 ‘준비비용’, 협상과 계약 과정에서의 ‘합의비용’, 거래관계 유지를 위한 ‘통제비용’, 계약기간 중 조건 변경으로 인한 ‘적응비용’ 등의 ‘거래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줄이는 데 있어서 신뢰가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계약 당사자 간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계약에 수반되는 다양한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란 공동체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서로 예측가능한 보편적 규범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뢰(trust)라는 단어의 기원처럼,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의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신뢰관계는 개인 간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 형성의 기본으로도 작용한다. 기업에 대한 신뢰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을 고려하며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기업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기업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브랜드 이미지도 개선된다.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신뢰성을 믿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기업의 마케팅과 브랜딩 전략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신뢰받는 기업은 인재 유치와 유지에도 유리한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우수한 인재들은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기업에서 일하길 원하며, 사회적으로 존재의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에서 자신의 경력경로를 설계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긍정적 상황에 의해 기업에 대한 신뢰는 기업의 경쟁력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신뢰를 잃은 기업을 목도하게 된다. 기업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데, 먼저 제품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로 기업이 소비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제공하게 된다면 빠르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또한 열악한 고객 서비스 문제로 부실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기업이 데이터 침해나 사이버 공격을 경험하고 고객 정보가 훼손되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인 정보와 금융 정보가 해당 기업에서 안전하게 관리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게 된다. 뇌물, 부패 또는 환경 위반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기업도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신뢰관계는 개인 간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 형성의 기본으로도
작용한다. 기업에 대한 신뢰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특히 윤리적 차원에서의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기업활동 전반에 있어서의 윤리성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리적 차원에서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존폐의 위기를 겪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폭스바겐을 들 수 있다. 폭스바겐은 2014년 기준으로 토요타에 이어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폭스바겐이 유독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시장이 미국이었다. 2015년 8월 말, 폭스바겐의 미국시장 누적 점유율은 3.5%에 불과했는데, 당시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8.1%인 것에 비교하면 세계 2위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기업으로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성과였다. 폭스바겐이 미국 시장에서 유독 기를 펴지 못한 이유는 소비자들이 디젤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폭스바겐이 생산하는 차종은 대부분 디젤 자동차였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집권 이후 자동차 연비 및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했는데, 이에 대해 폭스바겐은 자사가 개발한 TDI 디젤 엔진이 친환경일 뿐만 아니라 고효율인 엔진으로 소개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개시했다. 이를 통해 환경문제에 민감한 미국인들에게 폭스바겐이 제작한 디젤엔진 자동차는 가솔린엔진 자동차만큼 깨끗할 뿐만 아니라 연비와 출력이 훨씬 좋다는 인식을 심고자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자료 조작에 따른 비윤리적 기업활동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나고 미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의 디젤자동차는 퇴출될 지경에 놓이게 된다. 사건이 발생한 2015년의 하반기, 미국 시장에서 폭스바겐 자동차 판매는 총 76대에 불과했으며, 정부 차원에서의 소송액 100조 원에 육박하는 민사소송 및 정부와 고객을 속인 혐의로 형사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제조 기업의 경우에도 비윤리적 생산활동으로 인해 소비자들로부터의 불매운동에 직면한 경험이 있다. 이 기업은 상당히 많은 제품을 인건비가 저렴한 서남아시아 국가에서 생산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산이 미성년자들의 저가 노동력을 이용해서 생산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아동노동 착취의 이슈가 제기되었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뿐만 아니라 윤리적 소비에 대한 욕망이 높아진 소비자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기에 소비자들은 대규모 불매운동을 펼치게 되고 기업은 매출 급감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고객으로부터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어떻게 혁신을 이뤘을까? 신뢰회복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문제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문제를 무시하거나 어려움을 부정적으로 대처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다음 단계는 신뢰 상실의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신뢰를 잃은 기업들은 이해관계자들이 왜 그들을 불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제품 안전성 문제로 신뢰를 잃고 있는 기업이라면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윤리적 위반으로 신뢰를 잃는 상황에 처했다면 이를 조사하고 위반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까지 포함된 고려가 필요하다. 보상의 종류와 수준은 문제의 심각도와 고객들의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고객의 속상함을 덜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일련의 신뢰 회복 활동은 이해관계자들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하여야 한다. 커뮤니케이션과 투명성은 신뢰를 재건하는 핵심 요소다. 기업들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들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제품 안전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경우 회사는 제품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단계에 대해 고객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기업은 그 문제 자체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조치에 대해 이해관계자들과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것이다.